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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정의를 바로 세워야 사다리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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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정의를 바로 세워야 사다리가 살아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무척 중요한 책이지만,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 나가는지에 대한 관찰과 탐색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면 롤스가 규정한 정의는 이런 문장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정의는 ‘정당화될 수 없는 자의적인 불평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설명을 내려서 읽어봅니다. 여전히 어렵습니다. 원문의 직관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을 우리 말로 억지로 풀어내다 보니 문장 하나 하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잠깐의 검색으로 위대한 학자가 펼친 정의론을 제 것으로 소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제 나름의 설명을 드려야 할 듯 합니다. 5일부터 연재가 시작된 한국경제신문 창간 56주년 기획 기사에 대한 브리핑 차원입니다. 한경 창간일은 10월12일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요.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수송기가 하늘에 무차별적으로 흩뿌리는 낙하산 같은 존재로 태어난다. 착륙지는 정해진 곳이 없고 모든 것은 운수 소관이다.” 생명을 얻는 과정은 우리가 사전에 선택할 수 없고 철저하게 우연적이라는 것입니다. 성별 국가 지역 두뇌 용모 체력 부모 등을 부여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롤스는 이런 상태를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용어라서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기회 균등’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롤스는 이렇게 태어난 개인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어떤 사회적 계약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론을 설파했습니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을 전제로,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의도치 않게 가장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정의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현실 속 개개인들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배제하고 역지사지의 배려심이 작동하는 정의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자유’와 ‘차등’의 두 가지 원칙입니다.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의 첫 번째 원칙으로 자유를 지목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차등의 원칙은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축적한 국가의 부를 해당 사회에서 가장 빈곤하거나 불우한 계층을 배려하는데 쓰자는 겁니다. 노력이나 재능이 아무리 모자라고 부족해도 기여도를 넘어서는 배분을 하는 것입니다.

‘무지의 장막’ 앞에 선 인간은 이 두가지 원칙을 거의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태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구성원리로 채택됐고, 차등은 사회안전망 구축과 복지국가 건설의 이론적 뼈대가 됐습니다. 어느 쪽 원칙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눠지곤 합니다. 여기서 공정과 불공정을 가르는 중요한 또 하나의 원칙이 파생됩니다. 바로 기회의 균등입니다.

한국인 60% “성공 기회, 공정하지 않다”

요즘 2030 세대들이 가장 울분을 토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기회의 균등은 차등의 원칙을 구현하는 길목에 있는 것입니다. 낙하산 운이 나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도, 아니면 신체적 약점을 갖고 태어났더라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누리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또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을 발휘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도록 하는데 권력자나 부자들의 특권과 반칙이 끼어들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롤스식 자유와 차등의 원칙이 과연 정의롭게 구현되고 있는가, 기회의 균등은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느냐입니다.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국민들의 60% 이상이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사회지도층 등 기득권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가난해도 자녀가 노력해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54%가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한경은 이번에 우리 사회의 불공정을 호소하는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끊어진 사다리를 어떤 방식으로 복원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롤스의 전통적 담론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계층이동 문제도 다각도로 다뤄볼 것입니다. ‘2020 희망 모빌리티, 사다리를 다시 세우자’ 시리즈는 매일 2개면씩 총 닷새 동안 연재됩니다. 노경목 차장을 팀장으로 최진석, 조미현, 서민준, 강진규, 배태웅, 양길성 기자가 특별취재팀에 참여했습니다. A1,4,5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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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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