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그 역동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이는 한국경제신문 의뢰로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작성한 ‘사회이동성 조사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98년부터 2018년까지 3만5000가구를 분석한 이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가 관리·전문직이면 자식도 관련 직종에 종사할 확률이 최근 7년간 33.6%에 이르렀다. 1998~2004년 31.4%에서 2%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부모가 단순노무직 및 판매업에 종사하면 자녀가 비슷한 직업을 가질 확률도 1998~2004년 24.4%에서 2012~2018년 27.4%로 뛰었다.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56주년을 맞아 입소스에 의뢰해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3%는 “사회·경제적 기회가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부모가 가난해도 자녀가 노력해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53.6%가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특히 사회 지도층 등 기득권층이 불공정한 구조를 형성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응답자의 69.7%가 “기득권층이 본인의 자녀에게 기회를 몰아줘 불평등이 커졌다”고 답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대학 입학 논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등이 기득권에 대한 불신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국민은 이제 ‘개룡인(개천에서 난 용)’이 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태어난 개천을 계속 지켜야 할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새로운 도전을 막는 기득권 장벽, 기존 노조원만 보호하는 노동제도와 법, 근로의욕을 꺾는 값싼 포퓰리즘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