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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다" 장갑차 구매 줄인 호주…'K방산' 곳곳 지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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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국방전략보고서(DSR)' 결과 공개
장갑차 구매 450→129대로
자주포 추가도입 취소
한화에어로 "사업 축소되도 수주 노력 계속할 것"
호주 정부가 최근 예산 문제로 호주 육군용 장갑차 수요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면서 그동안 호주에 보병전투차량(IFV) 수출을 준비해온 국내 방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K-9 자주포와 같은 추가 자주포 사업도 취소돼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던 ‘K방산’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평가다. 가성비에서 한국 무기가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해외 여러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구매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어 방산업계 주의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호주, 자주포 2단계 사업도 전면 취소
호주 정부는 지난달 말 110쪽 분량의 ‘국방전략보고서(DSR)’ 결과를 공개했다. DSR은 호주의 국방 정책, 계획, 능력 및 자원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는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 강화와 자체 군사력 보강을 택했다. 지상 및 수중에서 정보, 감시,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해상 드론’ 등을 갖출 계획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와 FA-18F 전투기에서 쏠 수 있는 장거리 대함 미사일 등을 도입한다.



하지만 해·공군 전력 증강에 따라 호주 육군의 신형 장갑차 및 자주포 사업은 축소될 것이 확실해졌다. 호주 ‘랜드(LAND) 400 3단계 사업’에서 진행 중이던 보병전투장갑차(IFV) 구매 대수도 450대에서 129대로 3분의 1가량 감소했다.



이에 따라 250억호주달러(약 22조원) 규모로 예상됐던 호주 IFV 사업 규모 역시 대폭 줄어들게 됐다. 방산업계에선 지난해부터 호주의 사업 계획 수정이 예정됐다는 평가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호주 국방부 장관이 장거리 공격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호주군의 목표라고 공언하면서 해군과 공군 위주의 국방력 증강에 무게가 실렸다”며 “원래 지난해 예정됐던 차기 장갑차 선정도 최종 결정이 DSR 발표 이후로 늦춰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DSR에 따르면 장갑차와 함께 호주 육군의 자주포 사업도 축소됐다. 호주 군은 현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랜드 8116 자주포 획득사업 2단계’를 전면 취소했다. DSR 보고서는 “(자주포가) 요구되는 사거리나 치명성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장갑차 3단계 사업과 함께 이 같은 계획 취소가 미국 하이마스(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와 지상 기반의 해상공격 무기 획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국방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기존에 덜 중요한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호주에서 ‘AS-21’ 레드백으로 독일과 함께 장갑차 수주전을 벌이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막상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자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물량이 줄어들더라도 수주 계획은 변함이 없다”며 “호주가 사업제안서 제출을 요구하면 입찰가 등을 다시 책정해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독일 라인메탈이 호주 IFV 입찰가를 수정해 다음달 말까지 호주 정부에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화가 현지 생산 시 줄어든 도입 물량으로 생산비용이 늘어 독일 경쟁사(라인메탈)에 비해 수주전에서 불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라인메탈은 올해 들어 ‘박서 전투정찰차량(CRV)’을 내년께 호주 퀸즐랜드 현지 공장에서 역수입해 공급받는 방안을 호주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미국 디펜스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최근 호주군으로부터 180억유로(약 26조원)에 달하는 수백 대의 박서 CRV를 구입하기로 했다. 군사 칼럼니스트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호주가 장갑차의 현지 생산을 원할 경우 이미 박서 CRV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는 라인메탈이 유리하다”며 “호주로서는 처음 쓰는 한국 무기보다 이미 도입한 독일 장갑차를 선호할 수 있다”고 했다.
호주, MLRS로 美 하이마스 선호…천무 수출 무산
지난해부터 K방산은 중흥기를 맞았다. 하지만 방산업계에선 호주 사례에서 보듯이 언제든 무기 수주 환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현재 겉보기에 한국 방산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올 1분기 말레이시아와 1조2000억원 규모 FA-50 경공격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지난 2월 루마니아 국영 방산업체 롬암과 무기체계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하지만 방산 도입 규모가 큰 해외 사업에서 호주와 같이 돌발 변수가 발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무기 도입 국가들이 도입 무기의 가성비에 앞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일이 많아지면서 성능평가에서 앞섰더라도 낙관할 수 없다. 국내 방산업계는 2021년 호주 시장에 ‘K-9 자주포’ 등을 판매하면서 먼 거리에서 로켓탄을 쏴 적군을 초토화하는 다연장로켓(MLRS)인 ‘천무’ 판매도 타진했다. 하이마스는 유도로켓 6발을 한 번에 쏠 수 있지만, 천무는 12발까지 가능하다. 가격도 천무가 더 싸다. 하지만 이번 DSR 보고서를 통해 호주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제공한 하이마스를 우선 도입하기를 원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2020년께 KAI가 FA-50을 아르헨티나에 수출하려다 무산된 일도 있다. FA-50은 영국의 마틴베이커가 만든 조종사 ‘사출좌석’을 사용한다. 아르헨티나와 과거 포클랜드 전쟁을 치렀던 영국이 아르헨티나에 사출좌석의 부품 공급을 거부하면서 경공격기 수출은 없던 일이 됐다. 김민욱 국방과기술 편집장은 “현재 가장 성공적 진출인 폴란드 시장도 정권이 바뀌면 불확실성이 있다”며 “정치권에 떠밀려 수주에 나서지 말고 정교하게 전략을 짜 해외 시장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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