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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는 한국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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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는 한국의 기적

반도체사업과 포커게임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2등은 망한다는 겁니다. 1등의 베팅을 따라가다가 가장 많은 돈을 잃고 돌아선다는 것이죠. 반도체는 1등이 먼저 식사를 하고난 뒤에 2,3,4등이 줄지어 먹는 시장입니다. 시장을 선점한 1등은 2등이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교란합니다. 경쟁사를 퇴출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적자까지도 감수하는 전략을 펼칩니다.

이런 것을 요즘 말로 ‘갑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패배자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온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시장입니다. D램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의 광폭 질주에 독일이 자랑하던 키몬다가 2009년, 일본 반도체기업 연합체인 엘피다는 2012년에 각각 파산의 길을 걸었습니다. 대만의 난야는 이제 이름 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천하의 삼성전자라 할지라도 2등(SK하이닉스), 3등(마이크론테크놀러지)을 완전히 죽이지는 못합니다.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 진전으로 시장규모가 몰라보게 커진 데다 그동안 명멸해간 수많은 기업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추격전략도 고도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마이크론은 일본 엘피다를 흡수한 ‘미국+일본 연합군’ 기업입니다. 한국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공정기술에서 삼성전자에 6개월 정도 뒤처져 있지만 1등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글로벌 고객사들의 분산 욕구를 스마트하게 충족시키면서 ‘포커게임의 속설’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일부 제품의 수율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제품력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분기별 영업이익률이 삼성전자를 앞지르지는 못해도 늘 턱 밑까지 근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마이크론의 공정기술은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제법 뒤져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론은 한국기업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시장의 주력인 서버나 모바일보다 그래픽, 오토 등 특정 고객에 집중하고 보수적인 투자를 통해 수익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감가상각 기간을 길게 늘려 회계상의 수익을 높인다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2분기 코로나 쇼크에도 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입니다. ‘우리가 반도체 사업을 성공시키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한국 반도체는 사우디아라비아 전성기 시절의 원유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A1,3면에 황정수 이수빈 기자입니다.

p.s.)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한때의 스캔들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욕보이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있지만, 기업인으로서 그 분의 위대함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세기말 디지털 대전환의 선도자였으며 전 세계에서 애플과 맞장을 뜬 유일한 기업인입니다.

이 회장이 삼성 반도체의 전신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은 1974년이었습니다. 투자금은 개인 돈이었습니다. 1972-1973년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이병철 창업주가 경영하던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전관(삼성SDI)도 상당한 자금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이 회장이 사재를 들여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사실은 1년 이상 내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삼성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83년에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 오랜 기간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다니며 해외 전문가들을 만나고 일본에서 엔지니어들을 데려와 기술을 배우고 공장 건설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누가 이런 장면들 모아서 영화로 만들어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기적같은 스토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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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오늘의 신문 - 2024.03.28(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