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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적 구토' '서편제'…한국영화 100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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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호 극장' 단성사, 영화역사관으로 재탄생

1907년 설립, 2008년 부도
영안모자 계열사가 인수해
상영관 한 곳 그대로 보존
지하 2층 전체를 역사관으로

“‘서편제’가 단성사에서 크게 흥행할 때 몇 달간 매일 맞은편 다방에 앉아 길게 늘어선 관객들을 지켜봤습니다. 단성사에 오니까 제 영화 인생의 전성기가 생각나네요.”

임권택 감독이 23일 서울 묘동 ‘단성사 영화역사관 개관식’에 참석해 밝힌 감회다. ‘서편제’는 1993년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1907년 설립된 단성사는 1919년 10월 27일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했다. 한국 영화계는 매년 이날을 ‘영화의 날’로 기린다. 국내 첫 영화 상영관인 단성사가 오는 27일 ‘한국 영화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영화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건물 소유주인 영안모자와 계열사들이 단성사를 한국 영화의 탄생지로 보존하기 위해 역사관 건립비를 전액 투자했다.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한국 영화의 상징인 단성사가 경영난으로 부도가 나고 수년간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로 남아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해 준비한 단성사 영화역사관이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영화학도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단성사는 2008년 부도 이후 네 차례의 경매 절차 끝에 2015년 3월 영안모자 계열사인 자일개발에 인수됐다. 자일개발은 1년여간 리모델링 공사를 거처 2016년 9월 단성골드빌딩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얼리센터와 보석역사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백 회장은 한국 영화 태생지인 단성사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상영관 한 곳을 보존하고, 극장이 있던 지하 2층 1421㎡ 전체를 영화역사관으로 단장했다.

단성사 영화역사관은 1895년 뤼미에르형제의 최초 영화 ‘기차의 도착’을 비롯한 세계 영화사와 ‘의리적 구토’ 등 한국 영화사를 나란히 비교해 전시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포스터와 전단, 시나리오, 촬영장 스틸컷 등 원본 자료와 영화 관련 장비 등 8만2400여 점 중 5500여 점을 선별해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1907년 지어진 최초의 2층 목조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뒤 1934년 신축한 단성사 극장 건물의 벽돌과 원본 사진도 만날 수 있다.

단성사는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던 영화들을 상영한 한국 최고(最古)의 영화 상영관이다. 1919년 한국인이 최초로 만든 연쇄활동사진극인 ‘의리적 구토’를 상영했다. 1924년에는 단성사 촬영부가 7권짜리 극영화 ‘장화홍련전’을 제작, 상영함으로써 한국인에 의한 극영화의 촬영, 현상, 편집에 최초로 성공했다.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개봉해 일제시대 민족혼을 일깨웠다. 일제강점기에 단성사는 조선극장, 우미관(優美館)과 더불어 북촌의 한국인을 위한 공연장으로서 영화뿐 아니라 연극 음악 무용 발표의 장으로 활용됐다.

단성사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의 산실이 됐다. 단성사에서 개봉한 ‘겨울여자’(1977년, 58만 명)와 ‘장군의 아들’(1990년, 68만 명), ‘서편제’(1993년, 103만 명)는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잇따라 경신했다. 이처럼 전성기를 구가하던 단성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임 감독과 원로배우 신영균, 한국영화100주년기념사업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장호 감독, 배우 김혜자 등 영화계 인사 30여 명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자리를 함께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종로구)은 “정부가 못한 일을 민간인이 해낸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단성사 영화역사관은 문화유적지로서 의미가 깊다”며 “한국 영화 100년의 뿌리가 이제는 1000년의 숲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단성사 영화역사관은 앞으로 학생들의 교육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학생들의 단체 관람에 한해 주 1회 무료 개방한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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