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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 뭉근한 달도둑의 심장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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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퍼스트맨’ 스틸컷

영화 ‘퍼스트맨’ 스틸컷

새벽 어스름에 잠겨서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나를 둘러싼 공기가 느즈러지면서 미지의 소행성에 나 홀로 있는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고 잠시 그 순간에 머무른다. 단꿈을 꾸듯.

달은 참 선묘(鮮妙)하다. 눈으로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대상은 번번이 인간의 마음을 훔친다. 그래서 인간은 달에 갖가지 상상력을 대입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가늠할 수 없기에, 마음껏 채울 수 있는 무궁한 세계였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발명이 이어지면서, 그 달에 닿는 순간을 꿈꾸게 되었다.

비행기의 결함을 파악하는 테스트 파일럿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은 기계는 잘 다루나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뇌종양으로 죽은 어린 딸 캐런을 가슴에 묻고 NASA의 우주비행사가 된다. 그의 처 자넷(클레어 포이)도 새로운 시작을 격려한다. 그와 동료들은 혹독한 훈련도 치르면서 달로 향하는 꿈에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고로 동료들이 죽고, 닐의 고통은 더 깊어진다. 그는 그저 감내하면서 나아간다.

제임스 R. 한센의 ‘퍼스트맨: 닐 암스트롱의 일생’을 원작으로 한 ‘퍼스트맨’은 전기영화처럼 일대기를 그리지 않는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영웅이 아니라, 겹겹이 고뇌에 찬 인간을 그리고자 한다. 그래서 닐이 달로 채 출발하기도 전에 NASA에서 미리 써둔 추도사의 유려한 문구에는 그의 삶이 덜 묻어난다. ‘위플래쉬’ ‘라라랜드’처럼 음악영화가 아님에도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은 고혹적이다. 농밀하게 화면을 쓰다듬는다. 우주선에서 흐르는 ‘달의 노래(Lunar Rhapsody)’는 관객마저 황홀하게 물들인다.

닐은 우주비행사 면접에서 딸의 죽음이 미션 수행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전혀 영향이 없다면 거짓이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날 선, 혹은 자극적인 질문에도 담백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그는 우주에서 생사의 위기를 겪고 난 직후에도 자신이 놓친 것이 뭔지를 곱씹어보는 그야말로 꿈을 향하여 돌진할 따름이다. 정작 그가 놓친, 곱씹어 생각할 대상은 남겨진 가족이다. 자넷은 평범한 삶을 꿈꾸며 닐과 결혼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할 따름이다.

닐과 자넷의 온기가 느껴지는 엔딩신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라이언 고슬링과 클레어 포이의 빼어난 연기 덕분이다. 가공하지 않은 감정 그 자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에서 닐이 달에 다녀온 직후, 모두 달에 가는 그날을 꿈꾼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달 여행은 아득하다. 그런데 데이미언 셔젤은 닐이 보고 느꼈을 달을 스크린으로 훔쳐왔다. 초고화질의 65mm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달 착륙 시퀀스는 어마하다. 오롯이 달이 보인다. 피부로 달이 느껴진다. 관객은 허락도 없이 달을 방문한 ‘달도둑단’의 일원이 된다.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퍼스트맨’을 ‘IMAX-2D-4DX’ 순으로 본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아니 ‘달’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IMAX를 권한다. 그러나 141분의 러닝타임이 만만찮은 어린이와 동행한다면 4DX도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 에드(제이슨 클락)가 자신의 우주 비행을 통해 아들의 생각이 훌쩍 자라는 모습을 본 것처럼, 아이가 경이로운 체험을 통해 훌쩍까지는 아니어도 감성이 한 뼘 크는 순간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닐의 심장이 벼랑으로 내몰리면 죽은 딸 캐런의 환영이 보인다. 비행 중 생존의 위협에도 진중했던 그를 우르르 무너뜨리는 존재는 오직 ‘캐런’이다. 닐은 달에 캐런의 팔찌를 남겨둔다. 달에 무엇을 가져가고 싶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연료라고 답했던 그가 정작 가져온 것은 딸의 이니셜이 박힌 팔찌였다.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느 별에 사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감미로울 거야.’

닐은 달을 바라보는 순간마다 캐런을 떠올릴 듯싶다. 오래도록 그윽하게, 캐런과 마주할 듯싶다.

10월 18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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