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 17일 "한국 정부로부터 최대 80억달러(10조5600억원)의 차관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가 같은 날 발표한 1억3000만달러(1716억원)의 61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정부 측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며 정식적으로 항의할 뜻을 밝혔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우크라이나, 한국으로부터 극도로 호의적인 조건으로 최대 80억달러 유치 예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 자료는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의 방한 중 한국 대외협력기금(EDCF)를 통한 차관 제공에 합의했다고 알렸다. 이같은 발표는 우리 정부가 지난 17일 가서명했다고 발표한 '대한민국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 간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에 관한 협정'의 내용과 일치한다.
문제는 지원 금액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 차관의 최대 규모를 1억3000만달러라고 알린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율리아 스비리덴코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인용해 "한달 후 협정이 정식 서명 되면 올해 내로 EDCF에서 3억원이 지원되고, 내년에는 30억달러의 차관이 제공된다"며 "지원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면 차관의 최대 규모는 80억달러까지 늘어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또한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차관이 40년 만기, 연이자 0.15%라는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된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자료는 내용은 일부 국내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며 큰 반향을 끌고 있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고의적으로 차관 규모를 축소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측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협정의 내용과도 다르다고 해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발표한 숫자는 매우 부풀려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의 서명 대상인 기획재정부에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열리는 국회 외교통일위와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교부 및 대통령실을 상대로 이번 사건의 경위 및 진상에 대한 질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운영위 소속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대규모 지원 사업이 국회에 보고 없이 추진되었다면 심각한 문제"며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이나 측의 발표를 일주일 가까이 방치한 것이어서 외교적 참사"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본지 보도 이후 자료를 수정했다. 자료 제목을 비롯해 차관 최대 규모 및 2024년 지원분 관련 언급에서 금액 관련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범진/맹진규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