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글로벌 브리핑

"한국, 미국 원유 수입 땐 '1석3조'…새 공급처 얻고 협상력·동맹 강화될 것"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트럼프 '에너지 책사' 해럴드 햄 미국 콘티넨털리소시스 회장

한경 단독 인터뷰

트럼프와 2012년 첫 만남…그때 이미 대선출마 의지
OPEC 감산은 현명한 결정…유가 당분간 60달러 유지
사우디, 미국과 관계 틀어지면 안보에 문제 생길 수도

미국 에너지 업계에서 해럴드 햄 콘티넨털리소시스(CLR) 회장은 록펠러의 계보를 잇는 ‘석유왕’으로 통한다. 지난 11일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본사에서 만난 그는 한국으로 셰일오일 수출을 확대하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도표와 그림을 미리 준비해 이해를 돕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가장 신뢰하는 에너지 분야 전문가라고 들었습니다.

“2012년 초 밋 롬니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트럼프 당선자와 처음 만났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돼 대선 후보 출마를 검토 중이라며 제 의견을 물어보더군요. 5년 전이니까 준비를 많이 한 것이지요.”

▷‘트럼프노믹스’(트럼프 당선자의 경제정책)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를 생각해 볼까요. 경제는 엉망인데 인플레이션은 살인적이었죠. 기업들은 투자를 멈췄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낮췄어요. 그런 원칙으로 미국 경제를 성장의 반석 위에 올려놨습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가장 염두에 둬야 할 부분입니다.”

▷미시간주 등 러스트벨트에서는 규제완화 기대가 큰 것 같았습니다.

“그럴 겁니다. (미리 준비한 자료를 펼쳐보이며) 여기를 한번 보세요. (자료엔 역대 대통령 집권 시기별로 도입하거나 해제한 규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신설된 규제는 빨간 바탕으로, 폐지 또는 완화된 규제는 파란 바탕에 표시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는 전부 빨갛습니다. 이런 규제만 걷어내도 경제를 살릴 기회가 있습니다.”

▷미국 셰일오일 업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겠습니다.

“많은 사람은 셰일오일과 가스 채굴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셰일오일 생산량은 지난 10년 전보다 두 배로 급증했어요. 2025년이면 하루 200만배럴로 생산량이 다시 두 배가 될 겁니다. 규제 완화는 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고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버티고 있습니다.

“OPEC은 지난 50년 동안 국제유가를 마음대로 ‘조작(manipulate)’해왔습니다. 싸게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죠. 당초 미국 셰일업계는 생산단가가 비싸 경쟁이 안 된다고 봤습니다. 제가 그게 틀린 생각이란 걸 증명했습니다. 셰일오일과 가스 채굴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2014년과 비교했을 때 똑같은 비용으로 두 배의 오일을 뽑을 수 있습니다. 2014년만 해도 유정 하나를 뚫는 데 17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11일 반나절이면 됩니다.”

▷그래서 OPEC과의 치킨게임에서 승리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들이 먼저 무너졌어요. OPEC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겁니다. 낮은 가격으로 계속 버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저는 OPEC 회원국이 스스로 감산 협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OPEC 주축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다른 나라(미국을 지칭하는 듯)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안보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셰일업계도 상당한 피해를 받았을 텐데요.

“지난해 초 배럴당 20달러대로 급락했을 때 연말 국제유가를 60달러 수준으로 예측했어요. 수요와 공급을 감안해 그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봤습니다. 유가가 떨어진 것은 OPEC의 물량공세 때문입니다. OPEC은 셰일업계가 견딜 수 없는 낮은 수준으로 유가를 유지하길 바랐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100만배럴, 비(非)OPEC 회원국 러시아는 200만배럴을 늘렸습니다. 많은 셰일오일 업체가 문을 닫았죠. 직원들을 해고한 곳도 많았습니다.”

▷콘티넨털리소시스도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그래도 모두 이겨내려고 힘을 합쳤습니다.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재능, 그들과 함께 만든 조직문화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월급을 반납했고, 직원들도 각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임금 삭감을 감내했죠.”

▷OPEC 감산에 따른 국제유가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감산 합의가 이뤄지고 바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55~57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제가 60달러를 예측했는데 무려 3달러나 차이가 난 거죠(웃음). 어쨌거나 OPEC이 감산에 나서면서 목표로 잡은 유가는 배럴당 55~66달러 선으로 보입니다. 당분간 국제유가가 그 정도 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수송비 등을 감안하면 미국산 원유 경쟁력은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다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번 보세요. 2015년 12월 미국에서 원유 수출법이 통과되자마자 서부텍사스원유(WTI)와 브렌트유 간 가격 차이가 바로 사라졌습니다. 원유 수출을 앞두고 WTI 가격이 떨어진 것이죠. 이어 원유 수출을 위해 첫 선적이 이뤄진 게 30일 후입니다. 가격과 운송비는 수출에 큰 요소입니다. 수출 조건을 맞추기 위해 둘 다 점차 개선될 겁니다.”

▷다른 산유국도 똑같이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이 원유를 도입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란에서 수입하지는 않을 겁니다. 법과 질서가 지켜지고, 거래를 지원할 금융 및 법률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 좋겠죠. 미국은 세계 국가들에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산 원유를 도입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고 기존 거래 국가들과 가격협상도 할 수 있습니다. 차기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산 원유를 도입한다면 양국 간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과의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14년부터 SK E&S와 합작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SK E&S는 콘티넨털리소시스사와 50 대 50의 지분 투자로 오클라호마주에서 80개 유정을 뚫어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SK E&S는 훌륭한 회사이고 파트너입니다. 한국과의 협력이 계속 확대되길 바랍니다.”

■ 3633만t

한국이 연간(2014년 기준) 수입하는 천연가스 수입량. 카타르(36.1%), 인도네시아(11.2%), 오만(10.4%), 말레이시아(10.3%), 예멘(8.4%) 등 5개국에 약 80%가 치중돼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올해부터 연간 350만t, SK E&S는 2019년부터 연간 220만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할 예정이다.

해럴드 햄 회장은
셰일오일 '거부(巨富)'…에너지부 장관에 친구 프루이트 천거

셰일오일 개발로 거부가 된 인물이다. 1945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렉싱턴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열세 번째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했다. 17세 때 독립해 트럭운전기사 등을 거쳐 22세 때 오일회사를 설립했다.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소행성 충돌구(크레이터) 에임스홀과 노스다코타와 몬태나주 바켄지대에서 거대 유정을 발견했다. 수압파쇄법과 수평시추법이란 기존 기술을 융합해 셰일 암반층의 오일과 가스를 캐내는 데 성공했다. 20세기 초 석유왕 록펠러의 계보를 이을 거물로 거론된다. 경영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6월 기준 그의 보유 순자산 가치가 113억달러(약 13조3000억원)로 미국 내 39위, 세계 98위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측근으로 “미국이 세계 에너지산업의 정의로운 리더 자리를 되찾아와야 한다”고 조언해왔다. 이를 위해 석유와 가스 시추 관련 환경규제 완화와 파이프라인 정비, 에너지 수출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2월엔 미국의 원유수출법 부활을 주도했다. 워싱턴DC를 집처럼 드나들며 100회 이상 회의를 하는 등 법 통과에 온 힘을 쏟았다. 그해 이혼하면서 부인에게 위자료로 10억달러를 지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클라호마시티=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6(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