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와인킹’(본명 이재형·50). 구독자 68만 명(6일 기준)을 보유한 세계 1위 와인 유튜버다. 프랑스 등 유럽 3개국에서 와인 마케팅, 포도 재배학, 양조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와인킹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와인 전문가다. 그런데도 그는 와인을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비싸고 어려운 술이 아니라 누구나 즐기는 일상의 술”이라고. 그의 콘텐츠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언어’다. 여덟 개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는 현지어로 와인을 주문한다. 현지인과 어울리며 한 잔을 나누는 모습을 다개국어로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책을 들고 독자를 찾았다. 신간 <와인킹의 8개 국어>는 서른 살이 다 되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 10년 만에 여덟 개 언어를 유창하게 익힌 그의 여정을 담았다. 와인킹은 말한다. “우리가 영어를 못했던 건 재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와인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입장료 없는 ‘무료 시음’ 팝업스토어 행사를 열었어요. 수입사에서는 ‘공짜로 마시고 가면 어떡하냐’며 걱정했지만 막상 해보니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여러 차례 팝업스토어를 열다 보니 데이터가 쌓였고 이를 기반으로 직접 와인숍도 내게 됐어요. 모든 와인을 맛보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를 수 있는 매장이죠.”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제가 비교적 잘하는 게 외국어 배우기, 와인 공부, 해외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에요. 이 세 가지 모두 ‘언어’에서 출발하더라고요. 처음엔 와인을 배우기 위한 수단으로 외국어를 익혔지만 언어 자체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엔 영어처럼 특정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여러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단순한 공부법이 아니라 제가 언어를 통해 와인을 배우고 세계와 연결된 경험을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언어적 재능이 특별하지 않다’고 하지만 8개 국어는 좀 다른 얘기 아닌가요.
“원래 언어 재능은 평균 이하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이건 내 능력으로 감당이 안 된다’ 싶어 대학 입시(본고사)에선 포기하고 잘 못하던 수학을 택했거든요. 외국어로 승부를 보는 친구도 많았는데 저는 그들보다 훨씬 못했어요.”
▷외국어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부모님께 드리려고 와인을 사 마시다가 빠져들었어요. 알면 알수록 묘한 음료더라고요. 당시 서른을 앞두고 다니던 회사는 마음에 안 들었고 ‘남들이 하지 않는 걸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있었죠. 개척해보고 싶었어요. 그 시절만 해도 와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드물었어요. 한국어 자료도 거의 없었고요. 공부하려면 먼저 외국어를 배워야 했죠. 학창 시절 포기한 독일어를 다시 잡았습니다. 프랑스어가 와인업계 중심 언어긴 하지만 독일도 와인 주요국이니 조금이나마 익숙한 독일어로 시작해보기로 했죠. 그렇게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현지 와인 학원과 언어 과정을 조사해 스스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떠났습니다.”
▷불과 10개월 만에 독일어로 현지 대학 입시를 볼 수준이 됐다고요.
“절박함이 있었어요. 회사도 그만두고 남들처럼 안정된 길을 접은 만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죠. 그땐 외국인이 와인을 배울 수 있는 정식 과정이 거의 없었어요. 와인 학원 몇 곳이 전부였죠. ‘여러 나라 와인을 현지에서 배워오면 남들과 다른 경쟁력이 생기겠다’ 싶었어요.”

“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다섯 나라를 돌기로 정했습니다. 와인을 배우는 데 필요한 만큼이라도 익히자는 목표였죠. 독일에서 어학원과 와인 학교를 동시에 다녔는데, 부족함을 느껴 대학 강의까지 청강했어요. 물론 처음엔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숙소 근처 대학 기숙사에 와인 한 병을 들고 가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인데, 같이 식사할래요?’ 하고 말을 걸어봤어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들과 기숙사에서 만나 와인을 나누며 이야기했죠.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을 반복해서 듣고, 궁금한 표현은 바로 물어봤습니다. 어느 순간 언어가 몸에 배더라고요.”
▷낯선 환경에서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듣는 데 집중했죠. 대화가 잠깐 끊길 때 조금씩 끼어들었어요. 외국인이 흥미를 보인 건 ‘아시아 사람이 와인을 배우러 왔다’는 점이었어요. 그 주제를 활용해 대화를 열었죠. ‘너희 나라에 이런 와인도 있는데 몰랐어?’ 하면서요. 저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외국에서는 성격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겠더라고요. 말을 잘 못해도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들었고 틀리더라도 계속 시도했습니다. 어느 순간 귀가 먼저 트이더라고요. 들리는 단어를 익혀서 써보고 또 다른 표현으로 이어붙였어요. 대화 중 ‘이건 중요한 표현이다’ 싶으면 끝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너는 아직 단어를 100개도 모르는 것 같은데 말은 참 잘한다.’ 단어가 부족하니 자연스레 우회적 표현을 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문장이 길고 복잡해지거든요. 그러다 보니 언어 실력이 빨리 늘었습니다.”

“알파벳을 정확히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발음과 읽는 법을 완전히 이해해야 단어 철자를 듣고 물어보거나 설명할 수 있거든요. 가능하다면 알파벳부터 원어민에게 배우길 권합니다. 발음은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외국어를 배울 때 돈을 들여야 하는 구간이 있다면 처음에 들이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와인을 업으로 삼다 보니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았어요. 언어는 현지에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지만 그게 어렵다면 한국에서도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을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익히면 좋습니다. 문법은 몰라도 괜찮아요. 그 대신 단어 하나라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모르는 단어를 그냥 넘기지 말고 뜻을 끝까지 파고들어 문장 속에서 직접 써봐야 합니다. 그 집요함이 결국 실력을 만들어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여전히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I는 훌륭한 비서지만, 맞는지 판단하려면 기본 지식이 필요하죠. 번역기가 대신할 수는 있어도 그 번역이 정말 내가 의도한 뜻인지 확인하려면 언어 감각이 필요해요. AI를 잘 활용하려면 언어력이 더 중요하죠. 많은 사람이 앞으로 언어 공부보다 AI에 의존할 텐데, 오히려 그게 기회라고 봅니다. 언어의 기본기를 꾸준히 쌓는 사람은 점점 드물어질 테니까요. 원래는 ‘와인과 외국어를 이 정도로 공부하면 2~3년 안엔 누군가가 나를 따라잡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보니 사람들은 점점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아요. 그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을 벌고 있는 셈이죠.(웃음)”
▷이 책과 함께 즐기기 좋은 와인은 뭐가 있을까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소비뇽 블랑을 추천합니다. 어느 나라 것이든 괜찮다는 게 이 품종의 매력이죠. 뉴질랜드가 가장 유명하지만 프랑스 호주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에도 훌륭한 소비뇽 블랑이 있습니다. 소비뇽 블랑은 언어와도 닮았어요. 생산지마다 개성이 다르지만 어디서나 통하는 ‘기본’이 있거든요. 가격은 2만~3만원대면 충분합니다. 가벼운 산미와 신선한 과일 향이 있는 소비뇽 블랑 한 잔을 곁들여 읽는다면 언어와 와인 세계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주)한국경제신문사 | 서울시 중구 청파로 463 한국경제신문사 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