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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80시간 과로사가 이슈?" 의사의 분노…법정선 '무용지물' [김대영의 노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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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베뮤서 일한 20대 과로사 의혹
유족 추산으로 '주 80시간' 근무
12주간 평균 60시간 근무 땐 '과로'
주 41시간 근무자 과로 인정되기도
법원, 근로시간·업무 형태 모두 고려

"주 80시간 과로사가 이렇게 이슈될 일인가? 물론 돌아가신 분이야 안타깝고 산재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주 100시간씩 일하면서 '처단한다'는 협박을 듣고 있는 직종도 있다."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과로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의사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같이 꼬집었다.

그는 "자영업자들도 물론 주 80시간을 넘을 것이다. 거기에 사람마다 역치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건 오버라고 생각한다"며 "선택적 공감이 역겹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분노는 일부 누리꾼들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주 80시간 근무가 살인적인 것도 맞고 이슈될 일도 맞다. 근데 왜 베이커리에서 일한 사람의 근무조건은 이슈화되는데 주 80시간 넘게 일하는 전공의들에겐 당연한 것이냐"는 식의 지지가 이어진 것.

하지만 다른 누리꾼들은 이들을 질타했다. "사회는 연결돼 있어서 이런 게 크게 이슈화되면 법 개정이든, 뭐든 해서 모두의 근로환경이 나아질 수도 있는 건데 제발 연대하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런베뮤 20대 직원 과로사 의혹 놓고 '갑론을박'
20대 청년 A씨가 숨진 날은 지난 7월16일. 런베뮤 인천점에서 일하던 A씨는 당시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결국 숨졌다. A씨가 숨졌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자 그가 사망 직전 1주간 80시간씩 근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족이 A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대중교통 이용 내역 등을 종합해 근로시간을 추산한 결과다. 업체 측이 출퇴근 기록이 없다면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자체 추산을 하게 됐다는 것이 유족 측 주장이다.

나흘 전인 같은 달 12일 인천점이 새롭에 문을 열면서 하루 평균 13시간씩 일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자친구와의 카톡 대화 내용에선 15시간 가까이 식사를 못한 상태로 근무한 정황도 포착됐다.

하지만 회사는 유족 측에 "과로사했다는 거짓에 현혹돼 직원들이 거짓으로 협조하진 않을 예정이니 양심껏 모범 있게 행동하시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분을 샀다. 강관구 LBM 대표는 결국 사과문을 올리면서 "신규 지점 오픈 업무는 준비 과정에서 업무 강도가 일시적으로 집중된다"고 털어놨다.
과로 기준, 근로시간·업무 부담 요인 모두 고려
A씨는 과로사일까. A씨의 사망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60시간21분으로 추정된다. 이를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한 과로 인정 기준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전 12주간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이면서 직전 4주 동안 매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할 경우 업무와 질병 간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평가한다.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52시간을 초과한 상황에서 근무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본다.

주 52시간을 넘지 않아도 과로에 해당할 수 있다. 발병 전 12주간 업무시간이 주당 평균 52시간을 넘지 않더라도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판단해서다.

업무 부담 가중요인으로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 부족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한랭·온도변화·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등이 꼽힌다.

주 41시간 근무자 '과로사' 인정 사례도 나와
심지어 법원에선 주 40시간을 조금 넘겨 일한 경우에도 과로사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 근로자는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는데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1시간에 불과했다. 사망 직전 4주간은 평균 23시간으로 조사됐다.

이 근로자의 과로사가 인정됐던 이유는 업무량 증가에 있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병 직전 1주간 평균 근로시간이 12주간 평균치보다 30% 이상 증가하면 업무 강도와 책임,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뀌었다고 판단한다.

이 고시를 토대로 보더라도 과로 인정 기준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숨진 근로자가 교대제로 일한 데다 야간근무를 했던 사실을 종합할 경우 심혈관계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앞서 질병의 주된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 관계가 없더라도 과로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최소한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쳐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업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법원, 과로 인정 때 전후 사정 종합해서 판단"
A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당국 조사를 통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런베뮤 본사와 인천점을 대상으로 기획감독을 실시했다.

한 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은 고시에 따라 업무시간을 기준으로 뇌심혈관계 질환의 과로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한계가 있지만 법원에선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폭넓게 산재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의사 누리꾼'의 '주 80시간 과로사가 이슈될 일이냐'는 발언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30일 "더 이상 대한민국이 청년들의 과로로 지탱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A씨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전국전공의노동조합도 같은 날 "과로와 억압의 고통을 공유하는 모든 청년 노동자와 함께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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