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집이란 단순히 편안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인간이 '하늘과 땅, 신적인 것, 인간적인 것', 네 가지 관계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하죠.”
건축사사무소 ‘아파랏체’를 운영하는 이세웅 소장은 건축을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아파랏체(apparatC)’라는 이름에는 그의 철학이 녹아 있다. “아파랏(apparat)”은 ‘도구’를 뜻한다. 이 소장은 "하이데거 철학에서 도구는 세상에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체"라며 "예술이나 시처럼 건축도 세상에 감춰진 무언가를 드러내는 도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뒤에 붙은 ‘C’는 단순히 알파벳의 모양 때문이다. “C는 열려 있지만 닫혀 있는 형태예요. 완전한 개방도, 완전한 닫힘도 아닌 애매한 상태죠. 저는 그런 모호함을 좋아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거주를 ‘하늘, 땅, 신적인 것, 인간적인 것’의 관계 속에 놓았죠. 일상으로 바꿔 말하면 하늘은 세상의 이치, 땅은 자연, 신적인 것은 초월적 경험, 인간적인 것은 유한한 삶의 인식이에요. 이런 관계가 녹아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로 꼽은 것은 울산 울주군의 ‘차리카페’다. 그는 “굉장히 고요한 곳으로 설계에도 공을 많이 들였고 정원도 아름답다"며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고요함 자체가 현대 사회에서는 얻기 힘든 가치”라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건물을 설계할 때 단순히 ‘편리한 공간’을 넘어 사용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한다. 문학이나 음악처럼 건축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설령 비생산적인 고민이라도, 사람에게 사유의 계기를 주는 건물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축의 중요한 키워드는 ‘빛과 어둠’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밝은 공간만을 좋은 건축으로 생각해왔다. 모더니즘 이후 어둠은 비위생적이고 미개한 공간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어둠도 필요하다는 것이 이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고요와 사색을 만들어내는 시간은 대부분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지은 ‘차리 숙소’에는 이 생각이 반영돼 있다. 남쪽의 거실은 높고 밝게, 북쪽의 침실은 다락처럼 낮고 어둡게 설계해 두 공간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소장은 “빛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며 "어둠이 있어야 바깥의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현재의 아파트 생산 구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생산 과정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가 무시되고, 에너지 효율도 매우 떨어진다"며 "한국 아파트의 내단열 방식은 공사비 절감을 위한 선택이지만 에너지 소비를 높이는 후진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학 시절 살았던 유럽 도시의 주거 형태를 예로 들며 “아파트가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뮌헨, 베를린 등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이 6~7층의 저층 고밀도 도시라는 설명이다. 유럽 도시의 거리에는 상점이 있고, 공공공간이 연결되고, 사람들은 걸어 다닌다. 하지만 용적률은 오히려 서울보다 훨씬 높다. 그는 "용적률은 서울보다 높지만 도시의 질은 훨씬 풍요롭다"며 "한국은 반대로 고층 저밀도 구조라 거리가 사라지고, 광장도 없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건축을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건축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옳고 그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 속에서 자기 판단하려면 비판적 사고가 필수"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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