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요즘 엄마·아빠는 '이렇게' 키운다며?…'이색 육아'의 정체 [이혜인의 피트니스 리포트]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달리기와 육아를 한 번에?…국내 ‘유아차런’ 열풍



마라톤 대회를 달리는 사람들 틈에 유아차(유모차) 하나가 눈에 띈다. 유아차 안의 아이는 두 손을 위로 뻗고 바람을 느낀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한다. 유아차를 미는 엄마·아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자신의 소중한 취미를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벅차고 귀하다.

출산 후에도 ‘엄마·아빠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유아차를 밀며 달리고 있다. 달리기가 개인의 기록을 위한 운동을 넘어, 가족이 함께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아차 전용 대회와 전용 크루가 만들어지는 등 유아차런이 하나의 러닝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가 즐기는 유아차런
러닝 전도사로 활동 중인 안정은 씨는 국내 유아차런의 선두 주자다. 현재 국내 유일의 유아차 러닝크루를 운영하며, 육아와 운동을 병행하는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그는 취업 준비생 시절 우울증을 달리기를 통해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육아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해외에서 유아차를 밀며 달리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나도 저렇게 뛰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아이가 생후 8개월이 되던 때부터 유아차런을 시작했다. 이제 26개월이 된 아이는 먼저 “달리기 가자”고 말한다.

유아차런은 아이의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집 안에만 머무르면 자극이 부족하지만, 유모차를 타고 바람을 맞고, 사람들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과정에서 감각이 풍부해진다. 면역력과 뇌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엄마 역시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전환되고 체력이 회복되면서, 육아의 질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운동에 대한 의미도 달라졌다. 예전의 안 씨에게 달리기란 도전과 기록의 운동이었다. 특히 세계 6대 마라톤을 최연소로 완주하고, 사막 마라톤에도 성공한 안 씨에게 성취의 의미는 남달랐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 뒤로 마라톤은 ‘공유의 운동’이 됐다. 그는 “이젠 공기를 마시고, 풍경을 보고, 아이와 함께 있다는 그 순간 자체가 소중하다”며 “잠깐 고개를 돌리면 아이는 훌쩍 커 있는데,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붙잡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유아차런 붐 시작
안 씨는 지난해 5월 국내 최초의 유아차 러닝크루 ‘캥거루크루’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20여 가족이 함께 뛰었지만, 지금은 회원 수가 100가족에 이를 만큼 커졌다.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부모의 비율도 절반은 엄마, 절반은 아빠로 비슷하다.

캥거루크루는 한 달에 한 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거나 정기 훈련을 진행한다. 달리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돌봄’으로 이어진다. 함께 놀이터나 공원에서 아이를 놀게 하고, 피크닉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육아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활동 시기는 3~11월이다.

국내 유아차런 대회도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서울시와 한화손해보험이 주최한 제1회 유아차런 대회는 지난 5월 개최됐으며, 90분 만에 1000가족이 참가 신청을 마감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제2회 대회는 내달 1일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는 더 확대된 5000가족 규모로 열린다. 대회는 느린 속도의 거북이반, 빠른 속도의 토끼반, 그리고 걷기 시작한 아이와 참가할 수 있는 유아차 졸업반으로 그룹을 나눠 출발한다.

유아차런을 수월하게 하는 ‘조깅용 유모차’도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는 툴레(Thule)다. 정가는 약 160만 원이다. 조깅용 유모차의 특징은 세 바퀴라는 점과, 바퀴가 크다는 점이다. 또 바퀴가 아닌 손잡이에 브레이크가 달려 있어 급정지 시에도 안전하다. 또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인 오르빗은 약 140만 원대, 가성비 브랜드로는 카인드파파(50만 원대)가 있다.

○뭐부터 준비해야 하나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대체로 생후 12개월 무렵부터 가능하며, 많게는 7살까지 태우고 달리는 경우도 있다. 러닝 거리는 통상 아이의 나이보다는 성향과 컨디션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처음에는 5㎞ 정도로 시작해 익숙해지면 10㎞, 하프코스까지 늘려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함께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육아템’ 준비도 필수다. 유아차에는 물, 간식, 물티슈, 계절에 맞는 겉옷, 담요, 선크림, 선글라스를 챙겨두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유모차와 아이의 무게를 밀어야 하는 데다, 팔치기를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또 한 손으로 유모차를 잡은 채 달리면 자세가 쉽게 흐트러진다. 보통 1㎞당 페이스가 30초가량 늦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훈련하면 유아차를 밀며 풀코스(42.195㎞)를 서브3(3시간 이내)로 완주하는 러너들도 있다.

아이의 함께 달리는 그 길 위에서, 부모들은 다시 자신을 회복하고 있었다. 유아차런은 가족의 일상을 건강하게 물들이는 또 하나의 러닝 문화가 되고 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10.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