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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에 총을 쐈다"…미중 희토류 전쟁의 수혜주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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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던 미중 간 무역 전쟁이 다시 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핵심은 이번에도 희토류입니다. 지난 9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한 것이 조정의 빌미를 찾던 시장에 '하락 트리거'가 됐습니다. 미국은 이를 두고 "경제적 선전 포고"라면서 대중국 100% 관세를 예고, 위험자산 급락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후 "(중국 문제에 대해) 걱정 말라"면서 시장 달래기에 나섰죠. 반복되는 미중 갈등 패턴에 익숙해진 월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달 말 한국에서 열릴 APEC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회담이 성사되면 어떤 형태로든 일단 다시 휴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미중 간 긴장 고조는 이를 앞두고 서로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계산된 때리기라는 겁니다. 증시가 하락할 때마다 '바이더딥(저가매수)' 군단이 하방을 받쳐주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토류를 둘러싼 근본적인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희토류 공급망 구축이 인공지능(AI) 시대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 축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새 국면으로
희토류(rare earths)는 말 그대로 땅속에 있는 희소한 원소입니다. 실제로 희귀하진 않고 지구에 비교적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지만, 매장량의 절반 가까이(44%)가 중국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리·추출·정제·가공 과정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환경 오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희귀한 취급을 받습니다. 이 희토류는 반도체, 반도체 장비, 전기차 모터, 전투기, 풍력 터빈, AI 서버 냉각 모터 등등에 쓰여 첨단 기술과 국가 안보 산업에 필수적입니다. 중국이 AI 패권 경쟁 국면에서 희토류를 무기로 휘두르고, 미국은 공급망 탈(脫)중국을 위해 국가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희토류는 과거에도 미중 무역전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2019년 당시 트럼프 1기 미국 정부가 중국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화웨이 기술 수출 제재를 단행하자 시진핑 주석은 장시성의 희토류 광산을 시찰했습니다. 희토류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메세지였죠. 이 암시적인 행동만으로 당시 희토류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2023년 바이든 미국 정부 때입니다. 바이든 정부가 엔비디아와 AMD의 AI 칩을 대상으로 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규제를 발표한 겁니다. 희토류 채굴·정제 기술의 해외이전도 이때부터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올 들어 트럼프 정부의 무역 전쟁에 대응해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도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지난 4월 희토류 7종에 대해 수출 허가제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9일 희토류 원료와 자석, 기술에까지 '해외 직접 생산 규칙(FDPR)'을 적용한 겁니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은 중국산 희토류를 단 0.1%라도 사용하거나, 중국의 채굴·제련·분리·재활용·자석 제조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했다면, 그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되지 않았더라도 제3국으로 수출할 때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사실 이는 미국이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을 규제하기 위해 적용해온 규칙인데, 중국이 이를 희토류에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이 규제가 강력한 이유는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의 거의 모든 단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 산업의 약 60%, 정제·분리 산업의 91%, 희토류 자석 생산의 9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제 기술이나 자석 제조 기술을 쓰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고부가가치 영구자석에 필요한 중희토류(HREE) 분리 공정은 중국이 사실상 99% 독점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경제를 향해 장전된 총을 발사했다(존 뮬레나르 미 하원 중국소위원회 위원장)"고 비판한 이유입니다.
"미국, 전시(戰時)경제의 상황"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역시 희토류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였습니다. 하지만 희토류 생산 과정은 환경 오염이 심한데다 마진도 낮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희토류 산업을 국가 주도적으로 육성해온 중국과 달리, 환경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서방 생산국들은 잇달아 철수하고 중국 공급망에 의존해왔습니다. 중국이 경쟁자들을 퇴출시키는 방법, 즉 저가 공세로 시장을 독점하는 패턴 역시 여기에도 작동했습니다.

이런 희토류 중국 의존은 공급망 분리를 추진하는 트럼프 정부에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중희토류가 핵심 원료로 쓰이는 영구자석은 AI 서버, 전기차, 미사일, 전투기, 풍력 터빈 등 국방·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 부품인데, 그 희토류를 중국이 쥐고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구자석은 외부 전류를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력을 유지하는 자석입니다. 희토류 영구자석은 네오디뮴(Nd), 프라세오디뮴(Pr), 디스프로슘(Dy), 사마륨(Sm) 등 중희토류 원소를 포함해 일반 자석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자력을 가집니다. 희토류가 없으면 자석의 크기도, 전력 소모도 몇 배로 커지게 됩니다. 중국은 이 네오디뮴·사마륨 자석 생산을 90% 이상 점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로 핵심 전략 산업을 인질로 잡힐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희토류 13종의 무역이 막힐 경우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잠재적 손실 규모는 1,3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또 한 번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미국은 공급망 탈(脫)중국을 위한 재편에 계속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아카데미증권은 이번 중국의 희토류 규제 강화로 "미국의 정책적 투자 판단이 안보 기반 생산 능력으로 확실하게 재정렬됐다"면서 "에너지·전력·부품·반도체·바이오 전반의 국내 자급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배가될 가능성이 높고, 모든 규제도 '전시(戰時)경제에 준하는 수준으로 실용성을 최우선에 두고 재점검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희토류 공급망 재편 과정의 수혜주
이런 환경에서 투자자들은 ① 미국의 자체 희토류 공급망 구축 노력 ② 희토류를 대체하거나 저감하기 위한 기술 개발 노력 ③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심화할 수 있는 전력 병목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2027년부터 국방 분야에서 중국산 희토류 자석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 지원과 투자도 대폭 늘리고 있죠. 희토류 및 핵심 광물에 대한 전략 비축 확대, 희토류 생산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및 자금 지원, 희토류 생산 가격 하한 보장 등입니다.

정부와 교감 하에 월가 대형 금융사들을 필두로 민간 투자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JP모건은 핵심광물, 국방, 에너지, 기술 등 미국의 이익과 안보에 핵심적인 분야에 1조5000억 달러 자금 조달을 지원하고, 이 중 100억 달러는 직접 지분 투자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MP머티리얼즈(MP), USA레어어스(USAR), 크리티컬메탈(CRML), 라마코리소스(METC), 에너지퓨얼(UUUU) 등 미국내 희토류 생산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의 15% 지분 투자까지 받은 MP머티리얼즈는 올 들어 이미 6배 급등했지만 미중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갭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미국 최대 우라늄 생산업체에서 희토류 채굴·정제·분리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에너지퓨얼도 전략 비축량 확대 정책의 수혜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서방 광물 동맹'을 추진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호주 업체들도 수혜주로 거론됩니다. 세계 2위 희토류 생산기업인 호주 상장 라이너스레어어스(LYC)가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는 미국 희토류 자석 제조사인 노비온과 최근 희토류 영구자석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적 협력 MOU를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희토류 외 리튬, 우라늄,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 공급망 자립도 미국 정부의 정책적 화두입니다. 이를 위해 트럼프 정부는 북미 최대 리튬 매장지를 보유한 리튬아메리카(LAC), 미국 알래스카 북서부 앰블러 광물지대에서 구리·아연·코발트 등 다중 금속 매장지를 개발 중인 트릴로지메탈(TMQ)의 지분도 확보했습니다. 월가는 심해저 광물 탐사 업체 더메탈컴퍼니(TMC), 전략 금속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니오코프(NB) 등을 포함해 다음 '트럼프픽'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대표 ETF로는 글로벌 희토류·전략광물 기업 20~25종 편입하고 있는 '반에크 희토류·전략광물 ETF(REMX)'가 있습니다.

희토류 사용을 줄이거나 아예 대체하려는 기술 개발 노력도 한창입니다. 테슬라(TSLA)는 비희토류 영구자석 모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이외 많은 글로벌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네오디늄 저감형 자석, 고성능 페라이트 자석, 망간 기반 자석 등 다양한 대안을 연구 중이지만 상업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희토류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심화할 수 있는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시장의 관심이 쏠릴 수 있습니다. 이미 AI 데이터센터 확산의 가장 큰 병목인 전력 소모를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생산·활용하는 솔루션이 핵심 테마가 됐습니다. AI 서버 냉각 솔루션 대장주 버티브(VRT)나비타스세미컨덕터(NVTS)·파워인테그레이션스(POWI) 같은 전력반도체 회사, 초저전력 광연결 솔루션을 공급하는 포엣테크놀로지(POET) 등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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