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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으로 가라"…국민의힘 대변인 '악플 세례' 왜? [정치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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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與 대변인에 명절 인사한 野 대변인
"공격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했다가
"국힘 나가라" "첩자 XX" '악플 세례'

'스타' 여야 행사 참석 못한 모경종까지
강성 지지층 여야 화합 가로막기 반복


단순한 예의가 '배신'으로 둔갑하는 기현상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최근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가 자당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맹렬한 '첩자' 역풍을 맞은 것이 그렇다. 여야를 막론하고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화합을 원천 봉쇄하는 양태가 한국 정치의 심각한 병폐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박성훈 대변인은 지난 8일 박수현 대변인에게 "선배님 추석 명절 잘 보내셨는지 전화드렸다. 언제나 존경하는 마음으로 더 잘 모시겠다. 시간 되실 때 식사라도 모시겠다"며 "어제 선배님에 대한 공격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명절 인사차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락했다.

박성훈 대변인이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최근 국민의힘을 '독버섯'에 빗대 비판하는 논평을 냈던 박수현 대변인을 향해 그가 다시 '균'을 언급하며 반박하는 논평을 냈기 때문이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 정치인을 강도 높게 공격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던 나머지 연락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수현 대변인은 박성훈 대변인으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칭찬했다. 그는 "참 선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분이고, 어쩌면 큰 용기를 지닌 분"이라며 "양당의 관계가 이렇게 한 걸음씩 '신뢰와 공감'으로 국민께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싸울 땐 싸우더라도 화합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야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훈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두 사람의 문자메시지를 접한 강성 보수 지지층은 박성훈 대변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몰려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은 "해명하라", "싸우라고 자리 앉혔더니 시시덕거리고 있었네. 첩자 XX야. 그냥 민주당으로 꺼져라", "이 정도 반박하고 꼬리 내릴 거면 그냥 나가라", "민주당 첩자 박성훈은 국민의힘에서 나가길 바란다" 등 댓글을 달았다.

박성훈 대변인의 과거 더불어민주당 당적 보유 논란도 끌어올렸다. 그가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던 2019년 3월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파견을 나가면서 약 8개월 당적을 보유한 바 있다. 그는 공천 면접 당시 '수석전문위원의 당적 보유가 의무적인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해명했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를 언급하면서 "원래 민주당이라면서, 그냥 나가라 ", "출신성분이 문재인 정부인데 왜 여기서 배지 달았나" 등 비난했다.


강성 지지층이 여야 사이를 가로막는 행태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등 젊은 여야 의원들이 추석 연휴를 맞아 한 자리에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기부하는 행사를 기획했으나, 모 의원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등쌀에 못 이겨 끝내 불참했다.

모 의원의 동참 소식에 강성 지지자들은 그의 SNS로 향해 "내란 종식도 안 끝났는데, XXX들이랑 스타나 해야겠냐", "특검 수사를 받아야 하는 이준석과 김재섭과 스타 놀이나 하고 정신이 나갔구먼" 등 비판 댓글을 썼다. 결국 모 의원은 "이번 일로 실망하신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는 사과문까지 써 올렸다.


국회의원 전원이 기립해 대통령을 맞이하는 시정연설 관례가 강성 지지층 입김에 깨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들은 2023년 10월 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 대통령과 악수한 박용진·이원욱 의원 등을 향해 "내년 총선 때 보지 말자", "자존심을 상실한 작태", "좋아 죽는다" 등 반감을 드러냈다. 반면 악수를 청하는 윤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말했다고 소개한 김용민 의원은 영웅화됐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강성 지지층은 상대 진영과의 모든 접촉을 '금기(禁忌)로 규정하며, 상대 진영과 협치나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할 정치적 공간을 극도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정치가 진영 논리에 기반한 '강성 지지층 눈치 보기'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는 평가다. 아울러 일련의 흐름은 협치 시도자를 진영의 배신자로 낙인찍는 '배신자 프레임', 현 정국을 선악의 대결로 인식하게 하는 '투쟁 제일주의' 등을 낳는 모양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지지층이 여야 화합을 용인하지 않는 특유의 '징벌적 정치 문화'가 작동하고 있다"며 "경쟁 상대와의 정책적 대화 공간은 사라지고 강 대 강 대치만 남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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