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만2839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가 조사·공표한 올 9월 쌀(20㎏) 소매가격이다. 지난달 월간 쌀 소비자가격은 최근 10년 중 가장 높았다. 종전 최고치는 2021년 7월에 기록한 6만1725원이었다.
정부가 폭락한 쌀값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장에서 격리한 물량이 과했다는 지적도 많다. 작년 9월 쌀 수확을 앞두고 산지 쌀값이 20㎏당 4만3000원대까지 떨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통계청은 10월에 쌀이 12만8000t 초과 생산(수요량을 넘는 생산량)될 것으로 예측했다. 가뜩이나 쌀 재고가 남아도는데 10만t이 넘는 쌀이 새로 쏟아질 것으로 전망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보다 약 7만t 많은 20만t을 시장 격리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실제로 벼를 수확해보니 초과 생산량은 5만6000t 수준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초과 생산량보다 약 네배 많은 물량을 시장에서 빼낸 셈이다.
업계에선 올해 농가가 늦은 추석 때문에 벼농사 전략을 바꾸면서 재고가 부족한 기간이 길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농가 중엔 추석 수요를 겨냥해 낟알은 적어도 9월부터 수확할 수 있는 조생종 벼를 키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올해는 추석이 10월로 늦다 보니, 수확이 늦은 대신 쌀알이 많이 달리는 만생종 벼로 갈아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수확기 초반 햅쌀 공급량이 줄었고, 쌀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선 aT의 가격조사 지침부터 알아야 한다. aT는 가격 조사처의 15% 이상이 신곡(새로 수확한 쌀)을 취급하면, 이를 KAMIS에 공표하는 가격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aT가 쌀 판매처 50곳에서 가격을 조사한다면, 이 중 15%가 넘는 8곳에서 신곡을 판매할 경우 조사한 구곡(수확한 지 1년 넘은 쌀)과 신곡 가격의 평균을 쌀 소매가로 발표한다. 만일 신곡을 취급하는 가게가 8곳이 되지 않는다면 구곡 가격만 조사해 쌀값을 공표한다.

문제는 aT가 작년과 올해 신곡 가격을 반영한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해엔 10월부터 신곡 가격을 쌀값에 반영했지만, 올해엔 작년보다 한 달 이른 9월부터 쌀값에 올해 수확한 햅쌀 시세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가격 조사 지침에 따른 것이다. 올해는 9월부터 신곡을 취급하는 곳이 늘었지만, 작년엔 10월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신곡을 판매해서다.
쌀은 새로 수확했을 때 가장 비싸다. 묵은쌀보다 햅쌀로 지은 밥맛이 더 좋다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쉽다. 이 때문에 농정 당국도 쌀 시장격리를 할지 판단할 때 수확철 초기인 10월 쌀값 추세를 참고한다. 별다른 시장개입이 없다면 이때가 한해 쌀값의 정점이기 때문에, 앞으로 1년간 쌀값이 어떻게 흐를지 가늠할 수 있어서다.
이런 사정 탓에 올 9월 쌀값은 한창 비싼 2025년산 햅쌀 가격을 반영하면서, 비교 대상인 작년 9월 쌀 가격은 1년 전에 수확해 값이 많이 내려간 2023년산 쌀을 기준으로 삼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방식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산지 쌀값 통계와 차이가 있다. 산지 쌀값은 매달 5일과 15일, 25일 세 차례 공표되는데, 통계청은 10월 5일 자 산지 쌀값부터 그해 신곡을 기준으로 가격을 조사한다. 통상 10~12월을 쌀 수확기로 보기 때문이다. aT의 소비자가격은 수확기와 관계없이 소비자 눈에 보이는 가격이 중요하기 때문에 ‘15%룰’을 가격 조사 지침으로 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