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옷과 같다. 무조건 명품만 좋은 게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집이 가장 좋은 집이다.”
조경찬 터미널7건축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집이 단순히 거주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가치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축은 땅의 조건에서 출발하며, 그 위에서 사람의 삶이 펼쳐진다'고 보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조 소장이 설계한 서울 평창동 공동주택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큰길 초입, 가파른 경사지에 삼각형 모양의 대지가 있다. 흔히 공동주택에서 공유 공간은 뒤쪽이나 옆에 배치되지만, 그는 9가구가 함께 쓰는 공간을 건물의 한가운데에 두었다. 각 집은 이 공동 마당을 거쳐 들어가도록 계획했다. 그 과정에서 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했다. 조 소장은 "아파트 복도처럼 갑작스러운 만남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지는 만남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주택은 전용 40㎡(15평)부터 150㎡(45평)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자기 집 앞 마당 같은 외부 공간을 가진다. 평창동 특유의 산세와 어우러진 뷰, 그리고 작은 자연을 집 안에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필운동 다가구주택은 또 다른 고민의 산물이다. 좁은 필지와 단차가 있는 땅에서 그는 계단실 배치에 집중했다. 건물의 한쪽에 반복적인 계단실을 두는 대신, 각 층을 돌며 다른 방향의 전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덕분에 한 층마다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고, 한정된 공간에서도 입체적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집은 정해진 공식이 없다. 조 소장은 “옷을 고르듯, 집도 자기에게 맞아야 한다"며 "획일화된 구조 속에서는 취향이 길러지기 어렵다. 여러 집을 경험하며 자기만의 취향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지만, 언젠가 도심 속에서도 도시가 느껴지지 않는 개방적이고 동시에 폐쇄적인 집을 짓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면과 공간감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크기의 방이라도 체감 스케일이 다르다"며 "도면을 읽고, 집에 들어가는 길과 순서를 상상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철역에서 내려 골목을 걷고, 언덕을 오르고, 집 앞에 서는 과정까지가 집의 일부라는 것이다.
아파트 선호 현상에 대해 그는 비판적이다. 조 소장은 “단지화된 아파트는 원래 하수도, 전기 같은 인프라를 공공이 제공하지 못했던 시절에 등장한 방식"이라며 "지금은 그런 조건이 해소됐으니, 더는 단지화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효율과 편리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는 벽식 구조 아파트가 공사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방식임을 설명하며, 기둥보 구조로 설계된 집이야말로 수명도 길고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벽을 구조와 분리해 설계하면 가족의 변화에 맞춰 방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고, 삶의 유연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세대·다가구 주택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아쉽다고 했다. 조 소장은 “아파트가 아니면 실패라고 여기는 시선이 있지만, 잘 설계된 다가구는 삶의 질을 오히려 높여준다"며 "집은 재화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변하는 삶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는 과정에서 집도 함께 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계 원칙을 밝혔다.
다양한 건축을 맡아온 그는 주택뿐 아니라 오피스, 청년센터, 공방 등에서도 같은 철학을 적용한다. 그는 “건물은 땅의 조건과 맥락에서 출발한다"며 "건물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좋은 경험을 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은 특히 24시간 삶을 품기 때문에 가장 어렵지만,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건축이라는 것이다.
그가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꼽은 것은 경기 양평의 ‘칼산공방’이다. 은퇴한 판화가가 지역 주민과 함께 쓰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그는 건물을 배치할 때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뛰놀던 칼산의 바위를 중심에 두었다. 전시와 작업 공간이 복층으로 연결된 이 건물은 지역성과 개인의 기억을 함께 품은 공간으로 남았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로 창덕궁 인정전 앞마당을 꼽았다. 조 소장은 “네모난 마당이 아니라 사다리꼴로 좁아지게 설계돼 있다"며 "그 덕분에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 더 길고 장엄하게 느껴진다. 공간이 주는 감각과 권위의 연출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건축가로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조 소장은 "공간이 다양해지면 사람도 그에 맞게 변화할 수 있다"며 "건강한 사회를 위해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많다”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