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험난한 세상을 마주할 자녀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많습니다. 당장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 같은 교육비까지는 어떻게든 지원하더라도 자녀의 결혼 비용이 '억 소리'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대한민국 금융 소비자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결혼한 부부의 주택마련 및 결혼식 등에 소요된 비용은 평균 2억635만원에 달했습니다. 미리 자녀 지원 금액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노후 생활비를 끌어다가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계획적인 증여가 노후 준비의 핵심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또 무작정 한꺼번에 큰 금액을 증여한다면 생각하지 못한 세금 고지서를 받아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증여한 뒤 어떤 투자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결국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쓸 수 있는 돈의 가치는 치솟는 물가로 인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적은 돈도 일찍 증여해 오랜 기간 투자하면 자녀의 경제적 기반을 탄탄하게 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합니다. 전문가들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주식시장에 장기적립식으로 투자하면 저비용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자녀 출생 직후 증여를 시작하면 31세가 될 때까지 최대 1억4000만원을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습니다. 미성년 자녀에게는 10년마다 2000만원씩, 만 19세 이상 성년 자녀에게는 10년마다 5000만원씩 증여재산 공제(비과세) 한도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10년마다 공제 한도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일찍 증여할수록 증여세 없는 증여금액이 늘어나는 게 핵심입니다. 따라서 증여를 계획하고 있다면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증여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비과세 한도는 증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주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자녀의 비과세 한도는 부모 각각이 아니라 부부 합산입니다. 직계존속 기준이기 때문에 비과세 한도에는 조부모가 주는 금액도 포함된다는 의미입니다. 미성년 자녀라면 부모와 조부모가 10년마다 최대 2000만원 한도로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증여했다면 비과세 한도 내 금액이라도 반드시 증여세 신고를 해야 합니다. 10년 단위의 증여 기간을 계산할 때 증여하는 시점이 아니라 증여세 신고를 한 시점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증여한 뒤 신고하지 않았다면 추후에 자녀가 해당 금액을 출금하는 당일 증여한 것으로 보게 될 수 있습니다.

증여 후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절세나 물가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투자에는 ‘복리의 마법’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2000만원을 투자해 연평균 5% 수익률을 거둔다면 20년 후 3306만원이 불어난 5306만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연평균 수익률이 1%포인트만 높아져도 1108만원이 더 늘어납니다. 증여와 함께 복리의 마법을 잘 활용하면 성인이 된 자녀에게 억대 자산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목돈을 한 번에 증여하기 부담스럽다면 적립식 증여제도인 유기정기금 증여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연 3% 추가 할인율이 적용돼 한 번에 증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줄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증여액을 평가해 주는 것으로 화폐가치 하락을 감안해 준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미성년 자녀에게 매월 19만원씩 10년간 정기 증여하면 총액은 2280만원이지만 할인율을 적용한 할인평가액은 약 2003만원으로 줄어듭니다. 비과세 한도(2000만원)를 적용받으면서도 약 280만원을 추가로 증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우상향해온 미국 대표지수 ETF는 증여에 적합한 상품으로 꼽힙니다. 2005년생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간 투자했다고 가정했을 때 자산별 수익률은 미국 S&P500지수 602%(연평균 10.23%), 서울 아파트 127%(연평균 4.19%), 정기예금 81%(연평균 3%)입니다. 삼성자산운용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년간 미국 S&P500지수와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매달 각각 10만원 적립식 투자를 할 경우 원금 4860만원은 2억9400만원으로 여섯 배로 불어납니다.
자녀에게 ETF나 펀드를 증여하는 절차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증권사 홈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증여를 받을 자녀 명의의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야 합니다.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통해 계좌 개설이 가능합니다. 계좌 개설 이후 원하는 ETF를 매수하면 됩니다. 다음 단계는 증여세 신고입니다. 증여세 면제 범위 내에서 증여하더라도 증여 사실을 신고해야 합니다. 증여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관할 세무서에 증여세 신고서를 제출하고, 증여세 신고서에는 증여자와 수증자의 정보, 증여 재산의 종류 및 가액 등을 기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증여세 신고 후 증권사에 증여 신고 접수를 해야 합니다. 증권사에 따라 필요한 서류가 다를 수 있어 사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김도형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은 “경제적 독립은 자녀가 맞이할 미래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며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은 올바른 투자 습관과 그에 기반한 자산”이라고 말했습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