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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파트에 우주선이 있어?"…아이 질문에 '당혹' [오세성의 헌집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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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성의 헌집만세(29)

연탄 벗어난 현대식 주거의 상징이던 아파트 중앙난방
불편함과 노후화에 비중 4% 아래…역사의 뒤안길로
개별 난방 거쳐 현재는 발전소 폐열 활용한 지역난방 인기


최근 직장 문제로 경기 안산으로 이사한 30대 직장인 황모씨는 "아파트에 우주선이 있다"는 아이의 물음에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아이가 한 노후 아파트 단지 굴뚝을 가리키며 이같이 질문했지만 황씨도 정확한 용도를 몰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황씨는 "'정말 우주선 같다'며 아이 말에 맞장구를 쳤지만, 실제로 아파트 굴뚝을 본 것은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고 토로했습니다.

노후 아파트에서는 높게 세워진 굴뚝을 드물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시가스가 모든 지역에 보급되지 않았던 1970년대 아파트의 대중적인 난방 방식으로 자리 잡았던 중앙난방의 흔적입니다. 아파트 단지 중앙에 거대한 중유 보일러를 두고 일괄적으로 난방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아파트에서도 연탄보일러를 쓰던 시절, 난방과 온수를 중앙에서 관리하기에 개별 가구에서 따로 보일러를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획기적인 주거 환경 개선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전까지는 연탄보일러를 개별 가구에서 틀어야 난방과 온수 사용이 가능했고, 보일러가 고장 나면 알아서 고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대별 열량계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단지에서 사용한 연료 비용을 각 가구가 균등하게 나눠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온도를 조절하더라도 요금이 저렴해지지 않으니 대부분이 난방을 전부 틀어 두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겨울철이면 단지 중앙 굴뚝에서 까만 연기나 하얀 수증기가 배출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환경 오염 문제가 대두되고 중유 사용이 제한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도시가스를 이용한 개별 난방이 빠르게 보급됐기 때문입니다. 개별 난방이 보급된 지도 약 30년이 지났으니 현재 30대도 중앙난방을 경험해보지 않은 경우가 제법 많은 셈입니다.

이전에는 세대별로 보일러를 관리해야 한다는 불편 때문에 중앙난방에 밀렸던 개별 난방이지만, 연료가 연탄에서 도시가스로 바뀌며 관리가 용이해지자 장점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중앙난방은 여름철 중앙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으면 난방을 할 수 없었지만, 개별 난방은 언제든 온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난방비도 사용한 만큼만 내면 됐습니다. 기존 불편함을 해결하면서 개별 난방은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더군다나 중앙난방 방식으로 지어진 아파트들도 중앙 보일러를 철거하고 각 가구에 보일러를 설치해 개별 난방으로 전환하는 추세이기에 아파트에서 굴뚝을 구경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시내 아파트 가운데 중앙난방을 유지하는 아파트 비중은 4%가 채 되지 않지만, 개별 난방 단지 비율은 70%에 육박합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열흘 내내 붉은 꽃은 없다)'이라는 말처럼 개별 난방의 인기도 점차 식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지역발전소에서 아파트 단지로 중온수를 통해 열을 공급하는 지역난방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역발전소에서 뜨거운 중온수를 아파트로 보내면, 열교환기를 통해 각 가정에 온수와 난방으로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지역난방은 각 가정에서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고, 가구마다 온도조절기가 설치돼 난방비도 아낄 수 있습니다. 중앙난방과 개별 난방의 장점이 합친 것입니다. 24시간 발생하는 발전소 폐열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난방비도 저렴합니다. 그 결과 지역난방은 중앙난방과 개별 난방의 자리를 차츰 밀어내고 있습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주택의 약 22.2%가 지역난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역난방은 난방비 절감과 친환경을 동시에 충족해 주택 수요자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며 "열 손실을 줄이고 스마트홈 시스템과 결합해 세밀한 난방 온도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등 관련 기술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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