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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장 나와라"…'이 법' 통과되면 여기저기 불려다닐 판 [김대영의 노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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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범위 확대하는 노조법 개정안
원·하청 교섭 물꼬 틀 경우 노사 갈등↑
경제계 "누구와 교섭할지조차 모를 것"
대법, HD현대重 사건으로 판가름 예상

원청 기업이 하청기업 소속 노조와 교섭을 하도록 길을 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또다시 살아났다. 이 법안은 지난 국회에서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좌초됐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일각에선 불법파업 조장 우려도 나온다.
경제계, '사용자 개념 확대' 악영향 우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민주당은 앞서 단독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환노위 전체회의로 넘겼다. 국민의힘 측이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나섰고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신청해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듯 보였지만, 민주당은 지난 18일 곧바로 안건조정위 회의를 열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을 강행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경제계가 이달 들어서만 세 차례씩이나 성명을 내거나 긴급회동을 가진 것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근본적인 노사관계 질서가 틀어질 수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골칫거리 중 하나는 '사용자 개념 확대'다. 근로자에게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규정이 특히 문제다. 학계에서 언급돼 왔던 '실질적 지배력설'을 법으로 구체화한 조항을 만들어 하청기업 근로자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은 근로계약 당사자나 해당 기업의 사업경영담당자·노무관리자 등만을 사용자로 본다. 도급·파견 형태에서 볼 수 있는 원청기업은 하청기업 근로자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 통과 땐 노사 갈등 우려 '확산'
법안이 통과되면 원청은 하청기업 근로자·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하청 근로자나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금도 노조가 여러 개인 사업장에선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분쟁이 빈번하고 교섭 의제를 둘러싼 갈등도 상당하다. 여기에 이 법안이 더해지면 원청은 어느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할지조차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결국 노사 리크스가 경영을 발목잡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계의 우려다.

법안을 지지하는 쪽에선 도급·사내하청 등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한 만큼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개별 기업이 직접고용을 줄인다면 간접고용 근로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원·하청 교섭, HD현대重 사건서 판가름 전망
최근 이와 같은 원·하청 교섭을 둘러싼 대표적 사례가 CJ대한통운이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택배 대리점 대신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이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1~2심 법원은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먼저 원·하청 교섭 판도를 결정지을 곳은 HD현대중공업이 될 전망이다. 금속노조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2017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모든 대법관이 머리를 맞대야 할 만큼 사안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업들 중에서도 일찌감치 사용자 개념 확대를 논의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 국내 대기업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원·하청 관계뿐 아니라 지주사와 계열사 간 관계에도 영향이 있을지도 살펴봤다는 후문이다.
"대법, 예상보다 빠른 판단 내놓을 수도"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에 관한 판단을 예상보다 빨리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건에 관한 판단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 사건의 경우 1, 2심 모두 하청 노조와 교섭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특히 2심은 "현대중공업은 공사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을 사내하청업체에 지급했을 뿐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거나 임금 구조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임금이 현대중공업이 사내협력업체에 지급하는 공사대금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고 봐도 이를 두고 현대중공업이 근로자들 임금에 지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경제6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개정안에 따른 사용자 범위는 근로계약관계 존재 유무와 무관하고 판단 기관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어 객관적 기준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규제에 따른 사법리스크를 가장 우려하는 외투기업들이 어떠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해야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체교섭 거부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국내 시장을 떠날 것이 자명하다"고 꼬집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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