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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대출 부실 위험 팝니다"…어른거리는 '2008년 그림자'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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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좁아진 시장 폭과 높은 밸류에이션, 인공지능(AI) 버블 우려 등 갖가지 걱정의 벽을 타고도 마냥 오르던 미국 증시가 결국 버티지 못한 채 하락하고 있습니다. S&P 500 지수는 6일(현지시간) 1%, 나스닥은 1.9% 다시 하락했는데요. 미국 중앙은행(Fed)의 12월 금리 인하에 대한 불확실성, 연방정부 셧다운 장기화에 따른 단기 유동성 경색 심화, AI발 고용 악화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까지, 그동안 AI 주도 상승에 가려 있던 요인들이 시장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셧다운은 끝날 것이고, 설사 12월을 건너뛰더라도 Fed의 금리 인하 사이클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음이 가라앉고 나면 투자자들은 다시 지금의 AI 투자가 버블인지, 그렇다면 어느 단계에 있는지, 과연 언제 터질 것인지의 문제와 씨름해야 하겠지요.
2008년 금융위기의 주역들 재등장

특히 이번주엔 안 그래도 AI 버블을 걱정하는 투자자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들이 많았습니다. 먼저 사라 프라이어 오픈AI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시장이 AI에 충분히 열광(exuberance)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해 실망스럽다는 뉘앙스를 비치면서 "투자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지급 보증을 미국 정부가 최종 지원(backstop)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여전히 돈을 못 벌고 있는 오픈AI가 엔비디아, 오라클, AMD 같은 기업들과 1조4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데 대해 시장의 불안이 컸지요. 여기에 추가로 정부 지원까지 거론하니 '수익화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니냐' '버블을 더 키우겠다는 것이냐'는 우려를 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명 헤지펀드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9월 말 기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의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을 1조원 넘는 규모로 사들인 것이 확인됐습니다. 버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빅 쇼트'의 주인공이자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를 예측해 유명세를 얻었지요. 그는 풋옵션 포지션이 공개된 뒤 엔비디아와 오픈AI를 중심으로 오라클과 AMD 등이 복잡하게 얽힌 AI 순환 투자 구조를 지적하는 게시물을 X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뉴스의 주인공은 도이체방크였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 수십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대출을 보유하고 있는 도이체방크가 이 익스포저를 헤지(위험 회피)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한 겁니다. 도이체방크 역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예측해 해당 대출의 부도 위험만 판매하는 신용부도스왑(CDS)을 대규모로 만들어 팔았던 주역이죠.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낙관론이 지배하던 AI 인프라 투자 부문에서 도이체방크 같은 은행들이 위험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건 간과하기 어려운 신호입니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라클과 메타, 구글 같은 대규모 클라우드 공급자들이 데이터센터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채를 발행할 때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빌려주기 위해 나선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도이체방크 역시 최근까지도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에 서비스하는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에 수십억 달러 규모로 대출을 제공해 왔습니다.

FT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데이터센터 대출 부도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검토 중인 방안은 두 가지입니다. AI 관련 종목들로 구성된 바스켓에 공매도를 실행하거나, 합성위험이전(Synthetic Risk Transfer·SRT)이라는 신용파생상품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악몽 연상시키는 SRT
SRT는 이름 그대로 은행이 가진 대출의 부실 위험을 외부 투자자들에게 이전하는 상품입니다. 은행은 대출 자체는 대차대조표에 남겨둔 채 신용 위험만 분리하여 사고팔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이 상품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은행이 위험을 헤지하고 싶은 대출들로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시니어와 주니어 트랜치(tranche)로 나눕니다. 그리고 손실을 먼저 부담하는 주니어 트랜치를 기반으로 금융 보증 또는 보험 성격의 유동화증권인 신용연계증권(CLN)을 만들어 외부 투자자에게 판매합니다.

이를 통해 은행은 보통 해당 대출 포트폴리오 위험의 5~15%를 넘깁니다. 다시 말해 대출이 부도가 나면 외부 투자자가 우선 손실을 최대 15% 떠안는 것이죠. 이 위험을 부담하는 대신 투자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연 10~15% 수준의 높은 이자를 받습니다.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전문 운용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이 시장의 큰 손입니다.

이렇게 하면 은행은 실제로 대출을 넘기지 않고도 그만큼의 위험을 이전했다고 인정받아 해당 대출에 대해 쌓아야 하는 자기자본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자본 여력으로 신규 대출을 하거나 배당을 늘릴 수 있죠. SRT를 통해 위험 헤지는 물론 강화된 자본비율 규제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 SRT의 구조가 2007년 미국 주택 시장 붕괴를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쇄 부실,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폭시킨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왑(CDS)을 연상시킨다는 점입니다. CDO처럼 여러 대출을 쪼개고 모아 다시 재포장해 팔고, CDS처럼 신용 위험만을 분리해 거래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위험을 분산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위기 땐 위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 분산 → 리스크 전염 경로 확산
IMF도 SRT에 대해 "리스크를 다시 시스템 내로 순환시킬 수 있는(Recycling Risk)"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은행 금융기관 투자자 상당수가 레버리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 요인입니다. IMF에 따르면 사모펀드들이 A 은행이 발행한 CLN과 SRT를 사기 위해 B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결국 위험을 은행 시스템 밖으로 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비은행 기관의 레버리지를 통해 또 다른 은행의 자금과 얽히면서 리스크가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은행,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금융기관 간의 상호 연결성이 복잡해지면서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전염될 수 있는 경로가 증가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리스크가 분산될 수록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관리하기도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위기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이뿐 아니라 SRT 시장이 커질 수록, 이 상품의 높은 수익률을 좇는 투자자가 늘어날 수록 합성되는 대출 자산의 품질이 나빠지고 투자자들은 신용 심사를 느슨하게 하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도 커질 수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그랬듯이 말이죠.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조1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이 SRT로 유동화됐습니다. 아직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입니다. 다만 미국에선 2023년 이후에나 이 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대형 은행뿐 아니라 지역 은행들도 다양한 자산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거래를 늘리고 있어 향후 빠르게 시장이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이제 AI 데이터센터 대출까지 이 방법으로 유동화될 수 있다면 잠재력이 상당합니다.


물론 지금 이뤄지는 AI 인프라 투자와 20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일 대 일로 비교할 순 없습니다. 지금의 AI 투자 사이클이 닷컴 버블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지요. 또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하는 투자자들 사이의 거래라면 은행이 SRT 같은 상품들을 통해 일부 대출 부실 위험을 외부에 이전하는 게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것은 현재 오픈AI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막대한 규모의 AI 투자도, 그리고 그 AI 투자의 자금을 조달하는 부채의 위험도 SRT 같은 파생상품들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순환 구조를 돌리는 엔진의 힘이 강할 땐 문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그 힘이 둔해지고 약한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면 빠르게 붕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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