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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 가격 30% 떨어뜨린 트럼프…제약사 의외로 'OK'한 까닭은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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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비만약 가격을 크게 낮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약회사에 비만 치료제 가격을 떨어뜨리도록 압박한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신에 약값을 낮춘 회사에 의약품 관세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글로벌 제약회사 실적에는 단기적으로 악영향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체감 할인율은 30%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 덴마크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와 함께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비만치료제 가격을 낮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GLP-1 약물을 이용한 비만치료제는 현재 미국에서 약 500만명(2%)이 사용 중인 것으로 추정(페어헬스 자료)된다.

백악관이 내놓은 팩트시트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가 판매하는 젭바운드는 월 1086달러에서 346달러로,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과 위고비 가격은 각각 월 1000달러, 1350달러에서 350달러로 내려갈 예정이다. 2년 후에는 이 가격이 평균 월 245달러 수준까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다만 1000달러 등의 가격은 정가 기준이며 실제로는 기업 홈페이지에서 구매시 위고비는 월 499달러, 젭바운드는 월 349~499달러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트럼프 할인율’은 30% 수준인 셈이다.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등에 적용되는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 대상자로서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환자일 경우에는 월 50달러에 약을 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밝혔다. 각 제약사는 오젬픽·위고비·마운자로·젭바운드를 월 245달러에 메디케어 프로그램에 제공하되 수혜자는 50달러만 내고 나머지는 정부가 보조하는 방식이다. 주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도 동일한 가격이 적용된다.

약품 구매 창구는 내년 초 개설할 예정인 ‘트럼프 Rx(약국이라는 뜻)’ 웹사이트로 통일된다.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이 사이트를 통해 일라이 릴리의 당뇨병 치료제 트루리시티와 편두통 치료제 등을 정가보다 60% 싸게 판매하고, 노보 노디스크의 트레시바와 노보로그 등 인슐린 제품을 월 35달러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팩트시트는 “이번 협약을 통해 두 회사는 앞으로 시장에 출시하는 모든 신약에 대해 최혜국 대우(MFN) 가격을 보장하고, 기존 제품의 해외매출 증가분을 본국으로 환원(가격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 메디케어 잠재고객 확보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제약사에 약값 인하 약속을 받아낸 것은 관세 등을 무기삼아 위협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신 이들 회사에 향후 발표할 의약품 관세를 3년 동안 면제해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른 글로벌 제약사와도 유사한 약값 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약값은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약값을 결정하는데, 신약의 독점 기간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데다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와 민간 보험사, 제약사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됐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약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평균 가격 대비 2.8배 수준(2022년 기준)이다.

제약사 실적에는 단기적으로 악재다. 관세를 내지 않더라도 급격한 가격 인하로 인해 예상했던 이익을 크게 축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번 합의에 따라 글로벌 매출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좋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릭스 일라이 릴리 최고경영자(CEO)는 가격이 내려간 후에 판매량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재무전망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격이 높아 비만치료제를 이용할 수 없었던 이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약을 먹게 될 경우 전체 파이가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BMO 캐피털마켓의 헬스케어 담당인 에번 시거먼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두 회사는 이미 약국업체에서 가격 인하 압박을 받고 있었다”면서 “6700만명에 달하는 메디케어 이용자에서 새로운 신규 잠재고객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두 회사의 주가 움직임은 엇갈렸다. 노보 노디스크는 4.02% 하락한 반면, 일라이릴리 주가는 1.26% 상승 마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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