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강효정의 연기력은 장면과 장면을 부드럽게 잇는 링키지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 속에서도 발끝까지 세밀하게 제어된 움직임으로 그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작품은 안무가 허용순이 오랫동안 동경해온 이탈리아 음악가 에지오 보소의 음악에서 출발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더블베이스 연주자로서 다채로운 예술세계를 펼친 보소는 2020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허용순은 그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며, 그의 삶과 인간관계,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 컨템퍼러리 발레로 완성했다.
1부는 보소의 삶과 죽음을 주변 인물의 시선으로 그렸고, 2부는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형상화했다. 강효정은 객원 수석무용수로 참여해 보소의 뮤즈였던 배우 알바 파리에티를 연기했다. 허용순과 강효정은 독일 예술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서울 무대에서 비로소 처음 협업한 두 사람의 시너지는 그 자체로 공연의 큰 의미였다.
서울시발레단 단원들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커다란 나무 실루엣 아래 무용수들이 분주히 오가며 격정과 서정을 넘나드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세련된 색감의 미니멀한 의상과 절제된 무대미학은 작품의 감각을 한층 높였다. 단단한 뿌리와 흩날리는 잎, 열매와 가지를 표현한 동작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을 은유했다.
고난도의 리프트, 자유로운 회전과 축의 흔들림 등 고전 발레에서는 보기 힘든 움직임이 끊김 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독일 초연 후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인 이번 공연은 관객이 ‘백지의 시선’으로 예술을 만나는 즐거움을 줬다. 공연에 앞서 허용순은 “무용수들의 춤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강렬한 에너지를 느껴달라”며 “공연을 통해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열리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스’에 앞서 무대에 오른 작품은 ‘춤의 몬드리안’으로 불리는 네덜란드 안무가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Kammerballett)’였다. 지난해 서울시발레단 무대를 통해 아시아 초연된 데 이어 올해 재연됐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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