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수입 콩을 공매한 것은 지난달 18일이다. 공급난에 시달리는 두부 등 콩 가공 식품업계의 요청에 9290t을 풀었다. 입찰에 참여한 조합·업체가 수입 콩 가격에 더해 써낸 웃돈을 포함한 낙찰가는 t당 평균 60만5496원. 지난해 12월 공매 낙찰가(35만667원)보다 70% 이상 비싼 수준이다. 낙찰이 과열된 이유는 콩 수입량이 작년보다 적어 제조사들이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 두부·두유업체 ‘셧다운’ 예고
강원연식품협동조합 광주전남연식품협동조합 한국두부류협동조합 등은 각각 1000~1800t이 부족해 이번 공매에 참여했으나 평균 낙찰가보다 낮게 써내 입찰에서 떨어졌다. 한일홍 한국두부류협동조합 전무는 “비싸게 낙찰받더라도 소비자 판매가를 올릴 수 없어 한계가 있다”며 “콩 수입을 사실상 독점하는 정부가 가격 안정을 도모하기는커녕 공매 방식을 통해 과열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조합에서 수입 콩을 받아 두부 등을 생산하는 회원사들은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문항재 광주전남연식품조합 전무는 “회원사들이 잘해야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며 “공장 문을 닫으면 도산하는 업체도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aT가 시행하는 공매는 정확히 ‘수입권 공매’다. aT가 국영무역을 통해 들여온 수입 콩을 입찰에 부치는 게 아니라 단체나 기업이 미국 등의 대두 생산업체에서 수입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웃돈을 내고 이번 공매에서 낙찰받은 단체나 기업도 셧다운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에 있는 현지 생산업체와의 거래, 해상 운송 기간, 통관 절차를 고려하면 최소 2~3개월 이상이 걸리는 만큼 오는 12월에나 수입 콩이 들어올 수 있어서다. 매일유업 연세유업 같은 두유 제조사들은 다음달께 재고 물량이 바닥을 드러낼 상황이어서 발을 구르고 있다. 두유 업계 관계자는 “10월에는 다른 콩 가공 조합에 긴급 요청해 200t을 빌려와서 공장을 돌리는 형편”이라며 “정부가 공매라도 일찍 실시했더라면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가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공매 물량 자체가 충분치 않은 데다 예상했던 수요 단체 외에 개별 업체까지 대거 입찰에 뛰어들어 과열 양상이 빚어진 탓이다. 김석원 맑은물에 대표는 “수입권을 독점한 정부가 공급량과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공급 부족의 모든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콩 부족 사태 내년이 더 심각
정부가 수입 콩을 공급하는 주된 방식은 수요 업체에 직접 배분하는 직배다. 업체 입장에서 웃돈을 내지 않고 aT가 책정한 가격(㎏당 1400원 선)에 콩을 구매할 수 있다. 지난달 농식품부는 수입 콩 공매 외에 직배로도 1만5000t을 공급했지만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 올해 콩 수입량이 지난해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콩 가공업체들은 저렴한 직배 공급을 더 원하지만 aT가 보유한 수입 콩 재고량은 6000t 정도에 불과해 내년 초 공급 비축분을 고려하면 연내 추가 공급 여력이 없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달 기준 올해 수입 콩 공급량은 27만t 수준이다. 지난해에 비해 1만6000t 적다. 남아도는 국산 콩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대두 수입을 줄이고 있어서다. 내년엔 콩 수입량을 더 감축할 방침이어서 공급난은 한층 심해질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보다 수입 콩 쿼터를 더 줄이는 대신 대기업 등 상위 업체를 중심으로 국산 콩 사용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부와 된장 제조사들은 수입 콩보다 세 배 이상 비싼 국산 콩 사용을 외면하고 있다. 양득철 강릉초당두부 전무는 “국산 콩을 사용하면 단가가 올라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가 없다”며 “이런 여건에서 국산 콩 소비를 제조사에 떠넘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강릉=이정선 중기선임/이광식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