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욱은 과학사의 맥락을 열어젖히며 사유를 넓히고, 심채경은 일상의 결을 섬세히 길어 올린다. 서로의 결이 달라 더 깊어지는 대화.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와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행성탐사센터장을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만났다.
▷이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심채경=작년 추석 무렵 김영하 작가님이 뉴스레터를 통한 편지 연재를 제안해 시작했어요. 6개월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24편이 됐고, 그 글들을 다듬어 책으로 엮었습니다.
▷두 분 모두 과학자지만 글을 풀어내는 방식은 꽤 다릅니다. ‘물리학자가 꿋꿋하고 냉철하게 과학 이야기를 하는 동안 천문학자는 매양 과학 밖에서 놀다가 해 질 녘에야 사부작사부작 과학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라고 책에 쓰기도 하셨어요.
심=맞아요. 지식을 설명하기보다 그날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편지로 썼어요. 독자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교수님에게 정말 편지를 부쳤고, 그걸 다른 이들도 함께 보는 느낌이었죠.
김상욱=늘 지식을 전달하는 글에 익숙했는데, 편지 형식에선 고민이 되더군요. 과학 외에도 사적인 이야기나 경험을 더 넣어보려 했습니다. 심 박사님이 자기 얘기를 편안하게 풀어내는 걸 보면서 글이 꼭 지식 전달만이 아니란 걸 느꼈어요. 표현이 섬세하고, 언어의 결이 살아 있어 많이 배웠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상대의 글은 무엇인가요.
심=교수님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물리학자의 무덤’을 찾아간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철저한 유물론자인 분이 뉴턴과 스티븐 호킹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물리적 흔적이 여전히 땅에 남아 있을 것 같다’며 감상에 젖은 대목이 흥미로웠죠. 과학자들이 종종 보이는 그런 역설적인 모습이 저는 재밌어요.
김=그 글은 사실 심 박사님이 매년 토정비결을 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읽고 쓴 겁니다. 저는 그런 걸 전혀 믿지 않거든요. MBTI도 안 하는 사람이고요. 한편으론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인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저한테 과학적으로 느껴졌어요. 영혼은 증명할 수 없지만, 유해 즉 물질은 남아 있으니까요. 남은 흔적에서 의미를 찾는 건 비과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에 가깝죠.
심=저는 토정비결을 매년 꾸준히 봤고, 제 책상엔 3년 전 포춘쿠키에서 나온 쪽지도 붙어 있어요. 미신을 믿는다기보다는 그 문구가 들려주는 지혜와 경험, 두려움, 편향과 선택, 통찰을 가끔 바라볼 뿐이에요.
▷빨래방, 국수 등 일상의 풍경에서 과학적 시선을 끌어내는 게 무척 흥미롭습니다. 가령 국수를 먹다가도 면의 1차원적 기하학 구조를 짚고, ‘차원이 낮아질수록 주변과 소통하는 능력이 늘어난다’고 인간적으로(?) 풀어낸다든지요. 먹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요?
김=평소엔 그냥 맛있게 먹죠(웃음). 면을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저는 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1차원이 떠오르거든요. 다 그렇지 않나요?
▷다 그럴 것 같진 않은데요(웃음). 과학을 깊이 배우면 소위 ‘문과형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저는 꼭 과학을 깊이 공부해야만 그런 시선이 생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과학은 단순하고 명료해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 작은 호기심에서도 시작할 수 있죠. 국수에서 출발해 면봉, 이쑤시개를 보며 ‘이건 1차원일까?’ 생각이 확장될 수 있고요. 다만 사회가 문과·이과로 나누는 분위기가 있어 그런 호기심을 가로막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이 ‘과학책’으로 분류되는 건 조금 반대예요. 일상에 이미 스며 있는 과학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거든요.
▷김 교수님은 “물리에는 인간이 없지만, 모든 것에서 인간을 봐야 한다. 물리를 알려면 물리학자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고, 학문의 역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생들에게 ‘뉴턴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신다고요.
김=학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직업으로 연구하는 걸 넘어 그 주제가 너무 좋아서 파고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논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의 삶이 어떤지 궁금해지는 거죠. 사실 과학에서 본질적인 질문은 다 인간과 관련돼 있어요. ‘그는 이걸 왜 했을까’ 같은 질문이죠. 과학 자체는 수학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건조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늘 그런 배경과 인간적인 맥락이에요. 교육에서도 그런 부분이 꼭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에도 늘 오늘 배울 주제와 관련된 역사가 있으면 들려주고,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 강조하죠. 그럴 때 학생들의 눈이 제일 반짝거립니다. 그다음부터 수학 계산이 나오면 조금 멍해지지만(웃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내가 ‘어디를 모르는지’ 아는 겁니다. 한 학기 16주 수업에서, 몇 번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죠. 그래도 모르는 부분이 어느 맥락에 있는 것인지를 알면 세부 내용은 나중에 스스로 채워 넣을 수 있어요. 하지만 ‘왜 배우는지’ 자체를 모르면 전체가 텅 빈 상태가 되는 거죠.
▷교수님은 평소 ‘다정한 물리학자’로 불리고 싶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는데요. “무신론자지만 신이 없다는 증거를 보며 기뻐하는 사람은 아니길 바란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쓰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그 부분은 종교에 관한 제 생각을 정리한 거예요. 과학자다 보니 사람들이 ‘종교가 있는지,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인지’를 많이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신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교가 해온 역할은 무엇이고, 이제 과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아마 신이 있던 시절엔 사람들이 훨씬 살기 쉬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삶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했으니까요. 과학이 처음부터 ‘신은 없다’고 증명하려 한 건 아니지만, 연구를 통해 본의 아니게 신이 없는 듯한 증거들을 내놓게 됐죠. 그런데 이것이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신을 대신하는 새로운 종교나 권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 19~20세기를 돌아보면,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폭력적인 시절이기도 했죠. 물론 종교 자체가 폭력을 일으킨 적도 많지만, 동시에 종교가 약해지면서 사람들이 가치와 기준을 잃고 혼란을 겪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과학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그 역할을 인간이 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고, 희망을 주는 것. 쉽진 않겠지만 그것이 신의 힘을 약화하는 데 기여한 과학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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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