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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이 최고" 일본서 인기 폭발…'570억' 잭팟 터졌다 [이광식의 한입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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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운송비 다 합쳐도 日의 반값"…'K전복'의 진격

미끄러지는 전복가격, 산지가격 1만원대 흔해져
불경기에 손질 꺼려 수요 위축…고수온 피해적어 공급↑

수출로 활로 찾아…지난해 '역대 최대'
주요 수출처 日, 2011년 대지진으로 양식시설 파괴
해조류·인건비·전기료 부담에 회복 안돼


“전복 가격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13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수산업관측센터의 ‘전복 수산관측 9월호’에 따르면 지난 8월 전복 산지 가격(㎏당 10마리 기준)은 ㎏당 1만9420원으로 나타났다. 작년 같은 달(2만870원)보다 6.9% 떨어진 값이다. ‘고급 수산물’의 대명사인 전복 몸값이 2만원 밑으로 내려오는 것은 흔치 않다. 그런데 올들어 3월(1만920원), 4월(1만9710원)에 이어 8월에도 세 번째 1만원대를 기록했다. 당분간 전복 가격은 내림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KMI는 올 연말까지 전복 산지가가 2만~2만1000원대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광어 우럭 폐사할 때...전복 출하량은 오히려 늘어
전복 가격이 내려간 이유는 복합적이다. 수산물 시장에선 ‘불경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전복처럼 가격대가 높은 수산물은 경기 흐름에 따라 소비세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경제가 어렵다 보니 전복도 ‘선물용’ 수요조차 끊겼다는 말들이 많다. 차덕호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 상인회장은 “전복을 사러 오는 사람 자체가 없다”면서 “한때 전복은 소비자들이 산지에서 곧장 구매하는 흐름도 있었는데, 요즘엔 이런 추세도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유통업계의 분석은 좀 더 냉정하다. “요즘 소비자들과 전복은 잘 안 맞는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집에서 식자재를 손수 다듬는 일이 익숙지 않은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손질하기 번거로운 수산물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전복처럼 생산 기반이 많이 늘어난 수산물도 흔치 않은데, 일상에서의 소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입장에선 소비자들에게 ‘전복을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해보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고도 덧붙였다.

수요는 위축되는데 공급은 오히려 늘어나는 점도 전복 가격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KMI는 올해 전복 출하량을 2만6102t으로 보고 있다. 작년(2만3317t)보다 11.9% 늘어난 물량이다. 지난해 여름철 고수온으로 광어·우럭이 속절없이 폐사할 때도 같은 양식어종인 전복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김양수 완도전복생산자협회 본부장은 “올해의 경우 전복이 많이 나는 전남 완도군 바다 주변을 ‘진도 냉수대’가 감싸면서, 수온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냉수대는 여름철 연안해역에 나타나는 차가운 바닷물로, 주변 해역보다 수온이 5도 정도 낮다. 김 본부장은 “어민들도 미역이나 다시마 대신 고수온에 강한 ‘곰피’를 전복 먹이로 많이 키웠다”라고도 했다. 전복 양식 어가는 보통 먹이로 줄 해조류를 같이 양식하는데, 먹잇감도 고수온 피해가 없도록 단단히 대비했다는 뜻이다.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를 그나마 풀어주는 건 수출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활전복 수출량은 2786t으로 집계됐다. 1년 전(2666t)보다 100t 넘게 늘어난 역대 최대치다. 활전복 수출량은 2014년만 해도 1115t이었는데, 불과 10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올해도 8월까지 1913t 수출돼, 작년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수출처는 단연 일본이다. 지난해 활전복 전체 수출물량의 80%가 넘는 2288t이 일본으로 나갔다. 작년에 한국은 활전복을 수출해 약 5000만달러를 벌었는데, 일본에서만 4000만달러를 받았다.
'수산물 대국' 日도 양식 못해...한국이 파고들었다
일본에서 한국산 전복이 인기를 끄는 것은 가격 경쟁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KMI에 따르면 지난 8월 일본 오사카중앙도매시장에서 한국산 활전복은 ㎏당 3361엔에 거래됐다. 일본산 활전복(1만1171엔)의 30% 수준이다.

물론 전복 가격을 단순히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복은 사이즈가 클수록 가격도 크게 뛰기 때문이다. 일본 현지서 실거래되는 전복을 보면 일본산이 한국산보다 사이즈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수출하는데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감안해도 한국산 전복이 일본산보다 값싸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업체 관계자는 “국내 양식장에서 전복을 떼온 다음 일본까지 운송하는 데에 10㎏당 1만원정도 운송비가 붙고, 통관과정에서 세금이 8% 정도 더해진다”면서 “일본 현지에서 내륙운송비까지 고려하면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한국보다 일본에서 두배 정도 값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일본에선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한국산 전복이 ‘반값’ 수준이라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연간 전복 생산량은 약 1500t 정도로, 2만t이 넘는 한국보다 훨씬 적다. 일본 내 전복 양식시설이 전무해 주로 자연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전복 주요 생산지인 일본 동북 지역의 양식 시설이 대거 파괴된 결과다. 이때를 기점으로 연간 2000t씩 생산되던 양식 전복이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은 여전히 전복 양식에 소극적이다. 업계에선 해조류 가격을 이유로 꼽는다. 전복을 양식하려면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전복의 먹이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어가들이 전복과 미역·다시마를 같이 키우는 이유다. 그런데 일본에선 이들 해조류를 식자재로 쓰는 수요가 워낙 커 전복에게 먹이로 줄 수준의 가격대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인건비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전복을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어촌계가 어가별로 돌아가면서 노동력을 품앗이해준다”면서 “일본은 이런 시스템이 별로 없고, 외국인 근로자를 쓰기엔 비용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전기료도 일본에서 전복 양식이 성장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전복 양식은 육지의 양식장에서 치패(어린 전복)를 키우면서 시작된다. 이 치패장은 바다에서 물을 끌어오고, 수온을 유지하면서, 물을 여과해줘야 하기 때문에 전기가 적잖게 들어간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인건비나 기본적인 자재 비용 등을 감안하면 한국산 전복의 가격 경쟁력이 좋다"면서 "전복 뿐만 아니라 김이나 굴 등 양식어종 전반적으로 볼수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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