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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가장 혐오할 고전…'빅브러더'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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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

조지 오웰의 <1984>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에리카 매켄타퍼 노동통계국장을 해고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고용통계의 일자리 증가폭이 예상치를 밑돌자 “통계가 조작됐다”고 주장했고, 백악관에 기자들을 불러 모아 통계 오류를 주장하는 브리핑을 열었죠.

권력자는 통계를 미워합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숫자들을 바꾸거나 숨기고 싶어 하죠. ‘정치적 글쓰기의 대가’ 조지 오웰(사진)이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는 이런 권력의 욕망을 고스란히 고발합니다. 독재자가 제일 싫어할 법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 문학의 고전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1984년. 1949년에 출간된 걸 생각하면 미래를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정체불명의 독재자이자 감시자 ‘빅 브러더’가 통치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일당독재국가 오세아니아, 그곳의 수도 런던에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겪는 사건을 그렸습니다.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 소속 직원으로, 검열과 통계 조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풍요부가 4분기 구두 생산량을 1억4500만 켤레로 예상했는데 실제 생산량은 6200만 켤레에 그치면, 윈스턴은 과거 발표했던 예상치를 5700만 켤레로 고칩니다.

왜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을까요? 우리가 ‘빅 브러더’란 단어를 감시자의 대명사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빅 브러더는 집, 거리마다 숨겨져 있는 ‘텔레스크린’ 기계로 사람들의 모든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자신의 사상을 선전해요. 최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두고 일각에서는 CBDC를 통해 정부가 개인의 소비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며 ‘빅 브러더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소설 속 국가의 감시와 형벌은 전쟁을 이유로 합리화됩니다. 1984년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 전체주의 국가로 나뉘어 있습니다. 세 나라는 서로를 계속 공격하고 헐뜯으며 전쟁을 일으켜요.

국민을 통제하는 데는 ‘역사’와 ‘언어’가 동원됩니다. 진리부는 뉴스와 역사 등 모든 정보를 당의 입맛에 맞게 주물러요. 신문이 기록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건 수정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설 속 기사는 수시로 수정됩니다. 당의 슬로건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소설 속에서 당은 각종 공식 용어를 정하고 그것들만 사용하도록 통제합니다. 이 용어를 수시로 없애거나 고쳐요. 공식 용어가 까다로워지면 공문서나 신문기사 등 각종 문서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언어와 기록을 소수가 독점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하급 당원인 주인공은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다른 세상을 꿈꿉니다. 여성 동료 줄리아와 몰래 연인이 돼 비밀리에 활동한다고 전해지는 반란 세력 ‘형제단’과 접촉합니다. 당의 모순을 고발하는 금서도 건네받습니다. 둘의 일탈은 곧 발각됩니다. 소설은 일말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끌려가 갇히고 고문받습니다. 윈스턴은 고문을 피하려고 거짓 죄를 고백합니다. 줄리아를 배신한 뒤에야 풀려나요. 그는 사상의 자유를 포기하며 몸과 마음 모두 빅 브러더에게 굴복합니다. 빅 브러더를 사랑하기로 한 윈스턴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러더를 사랑했다.”

윈스턴과 줄리아의 반란은 실패했지만 소설의 반란은 성공했습니다. <1984>는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는 고전으로 지금껏 읽히고 인용되고 있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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