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다른 통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핵심 경제권이 지정학적 위기 등으로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면서다. 각국이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각자도생'의 과정에서 '환율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지난 8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0.5% 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달 17일 기준금리를 4.00~4.25%로 0.25%포인트 내렸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정책금리를 동결했다. 일본은행도 지난달 0.5%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상장지수펀드(ETF) 등 보유자산 매각을 결정하며 점진적 긴축 의지를 내비쳤다.
이는 과거 2008년 금융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정책 공조와 다른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불확실성은 새로운 표준이며 계속될 것"이라며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이 저성장에서 헤매는 동안 미국 경제는 독주 체제를 보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유로존(1.2%)과 일본(1.0%)의 전망치를 상회한다. 올 2분기 미국 실질 GDP는 연율 환산 기준으로 전기 대비 3.8%를 기록하며 견조한 소비와 투자를 확인했다.
미국 성장의 핵심 동력은 인공지능(AI) 관련 투자다. 기술 패권 경쟁이 반도체, 서버, 통신 장비 등 AI 관련 상품 교역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실물 경제의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 상반기 AI 관련 상품은 세계 상품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체 교역 성장 기여도에선 42%를 차지했다. 이런 미국의 성장세 속에서 Fed의 통화정책은 다른 중앙은행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독주 이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공격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올 상반기 미국의 견조한 성장은 관세 인상을 앞둔 기업의 '선행 구매'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는 최근 미국이 왜곡된 성장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 경제 침체의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 비용 문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유럽에 직격탄이 됐다. 유럽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대신 미국 등으로부터 LNG 수입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비용이 상승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EU의 평균 도매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MWh)당 약 90달러였다. 미국(48달러)보다 약 88%나 비싸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약 50% 격차)과 비교해도 크게 벌어진 것이다.
이런 비싼 에너지 비용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기반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했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무역 긴장이 재연돼 수출, 투자,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ECB는 경기 부양을 위해 Fed보다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미국과 유로존 간의 정책 및 성장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부동산이다. 로이터 통신의 지난달 경제학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주택 가격은 3.8%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시점은 2026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어 내수 회복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의 물가 지표는 이런 내수 부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중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4%를 기록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중국 경제를 "회복세가 고르지 못하다"고 평가하며, 정부의 재정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내수 부진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중국의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며, 제조업 경기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 둔화를 방어하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와 외부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WTO는 최근 세계 상품 교역량 증가율 전망치를 2.4%로 상향 조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AI 관련 제품 수요 급증과 관세 인상을 앞둔 기업들의 '선행 구매'라는 일시적 요인의 영향이다. 관세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내년 교역량 증가율은 기존 1.8%에서 0.5%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내년 전망은 더욱 암울하며 매우 우려스럽다"며 "올해 무역 회복력에 절대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연례 경제 보고서에서 "무역 관련 도전은 경제 분절화와 보호무역주의를 향한 기존의 변화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국은 수출 둔화와 제조업 타격을 입는다. 반면 동남아, 인도, 멕시코 등 중간재 대체 공급지는 새로운 투자와 수요를 유치하며 상대적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지역 간 에너지 비용의 격차는 글로벌 산업 경쟁력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너지 비용은 제조업, 화학, 철강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다. 유럽 기업은 미국 경쟁사보다 높은 생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 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Fed보다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장기간 유지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의 취약한 성장세와 구조적 제약 요인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수십 년간 이어진 초저금리 시대를 끝내고 올해 정책금리를 0.5%까지 인상했다. 추가 긴축을 예고했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경제와 물가가 전망에 부합하게 움직인다면 정책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차기 총리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가 확실시되면서 일본은행의 통화 정책이 크게 영향받을 전망이다. 이달 중순 총리에 취임하게 될 다카이치는 대표적 금리 인하론자다.
이런 통화정책의 탈동조화는 국가 간 금리 격차의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글로벌 환율 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대외 자본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 고금리 시기의 수주 부진 여파가 본격화되면서다. KDI는 올해 건설 투자가 8.1%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환율도 문제다. 글로벌 통화정책의 탈동조화는 원화 가치의 극심한 변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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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