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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美 국무부, 잇단 구조조정 여파에 추가 해고 위협까지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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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책임지는 조직이자,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의 리더십을 구현하고 조율하는 역할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국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외교부에 대응하는 조직이지만, 그 위상은 단지 일국의 외교조직 이상이다. 미국의 힘이 세계로 통하게 하는 통로이자, 세계가 미국과 관계를 맺는 창구가 국무부이기 때문이다. 양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만들어 온 국제 질서에서 국무부 사람들을 빼고 이야기할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명분을 붙여 가면서 줄곧 덩치를 키워 온 비대한 국무부 조직은 막대한 정부부채에 시달리는 미국에 큰 부담이기도 했다. 7만여명에 달하는 인원, 복잡한 부처 구성은 '지나치다'는 비판을 줄곧 들어왔다. 7만명 중 외교관(FSO)은 1만3000여명, 본부에서 주로 일하는 외교직(CSO)은 약 1만1000여명, 그리고 재외공관에서 일하는 현지채용 인력(LES) 4만5000여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모든 미국 정부가 국무부 효율화를 언급했지만, 본격적으로 메스를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번 트럼프 정부다. 지난 7월11일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1353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방대한 조직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이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파격적이고, 거친 방식이었다. 대면으로 해고를 통보를 하는 사치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인수인계도 사실상 전무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기사에서 메일이 대량으로 한꺼번에 발송되지 않아 몇 시간에 걸쳐서 해고 통보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이 시간 동안 조직 전체가 불안에 떨었다고 묘사했다.

조직 해체와 일방적 해고, 이어진 자발적 사직 압박을 통해 국무부는 지난 수개월 간 3000명을 줄였다. 국무부 전체 인원 7만여명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4만5000여명에 달하는 현지채용 인원 등은 애초 대상이 아니었다. 본부에서 근무하는 1만여명만이 타깃이었다. 본부에서 일하는 외교관 및 외교직 중 20% 이상을 한꺼번에 날린 셈이니 그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구조조정 대상은 뚜렷했다. 인권과 다양성(DEI) 등에 관한 인원은 본인의 업무 역량과 무관하게 잘려 나갔다. 기준일이 된 5월29일에 어느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지가 살생부의 근거가 됐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도 적지 않다. 줄이기 어려운 양자 업무 대신 다자 업무 담당자들도 상당수 피해를 입었다. 난민정착을 담당하는 모든 직원이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고 거버먼트 이그제큐티브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국무부의 핵심 역량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여전히 거세다. 국무부 내에서도 동료들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인한 충격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방향과 기존 국무부의 업무 방식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만큼, 대대적인 조정이 불가피했던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백악관과 국무부 직원들 간의 시각 차를 조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직 간소화했지만 상흔은 남아


이러한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의 결과, 트럼프 정부 하의 국무부 조직도를 보면 아래 바이든 정부의 조직도에 비교해 간소해졌다.

시민안전, 민주주의, 인권 차관 산하(J 패밀리)에 있던 외국 원조 및 인도적 업무는 기존 조직은 해체되고, 인도주의 문제와 종교자유 담당 차관 산하 조직(F 패밀리)로 전환 운영되고 있다. F 패밀리는 J 패밀리에 있던 민주주의, 인권, 노동(DRL) 조직과 종교 자유 조직(IRF), 인구, 난민, 이민(PRM) 조직 등과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담당 차관 산하(E 패밀리)에 있던 글로벌 식량안보(GFS) 등을 합친 조직이다.

장관 직속으로 있었던 12개의 각종 부속실은 8개로 줄었다.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차관 산하 조직(E 패밀리)은 7개 부서가 있었으나 4개 부서로 단순화됐다. 대신 군비 통제 및 국제안보 차관 산하 조직(T 패밀리)는 3개 부서를 5개 부서로 늘리며 강화됐다. J 패밀리 아래 있던 국제마약 및 법 집행(INL) 부서와 정무차관 산하 조직(P 패밀리) 아래 있던 테러대응 부서(CT)를 흡수했다.

다른 영역에서도 과도하게 세분화돼 있던 영역을 상당부분 조정했다. 사이버스페이스와 디지털정책 관련 부서(CDP)는 당초 부장관 직속이었으나 현재는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담당 차관 산하(E 패밀리)로 합류했다.



◆한국 관할 동아태라인, 차관보 아직 공석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역시 '한국을 누가 담당하느냐'다. 국무부는 크게 각국과의 외교를 담당하는 지역정책 담당과 영역별로 미국의 외교전략과 각 영역의 전문성을 연계하는 기능정책 담당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지역정책을 담당하는 정무영역을 통칭해서 정무차관 산하 조직(P 패밀리·Political Affairs)'라고 부르는데 이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앨리슨 후커 정무차관(Under Secretary)이다. 국무부 장관(Secretary), 부장관(Deputy Secretary) 다음으로 가장 힘이 센 자리다. P 패밀리 외에 나머지는 전부 비(非) 지역정책, 즉 기능정책을 담당한다.

후커 차관이 담당하는 P 패밀리는 현재 총 7개 부서로 나뉜다. 아프리카(AF), 동아시아태평양(EAP), 유럽 및 유라시아(EUR), 근동(NEA),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SCA), 서반구(캐나다와 중남미 지역·WHA), 국제기구(IO)다. 이 중에서 한국을 관할하는 것은 EAP다. EAP의 총괄은 원래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급이 맡아야 한다. 현재 이 자리에는 마이클 디솜브리 전 주태국 미국대사가 지난 3월부터 내정돼 있으나 아직 의회 인준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반년 넘게 공석이다.

동아태지역 총괄 차관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등을 두루 담당해야 한다. 차관보가 공석인 만큼 현재 케빈 김 선임국장(Senior Bureau Official)이 이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한국계인 김 국장은 당초 한반도 정책을 맡기 위해 부차관보(Deputy Assistant Secretary)로서 트럼프 2기 정부에 합류했으나 현재는 차관보의 부재 상황이어서 임시로 부차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급을 맡고 있고 담당 영역도 넓어졌다. 지난 8월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도 김 국장이 미국 측에서 양국 간 소통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디솜브리 차관보 내정자가 공식 부임하면 영역이 다시 조정될 수 있다.

동아태지역(EAP) 부서 내에서도 한국을 담당하는 과는 한국 담당 데스크(EAP/K)라고 부른다. 한국 담당 데스크의 규모는 현재 약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은 EAP 내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22년 국무부 내 중국 담당 데스크를 '중국조정국(Office of China Coordination)'으로 격상했다. 흔히 '차이나 하우스'라고 불린다. 한국 담당을 '코리아 데스크' 등으로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단일 국가 중에서 하우스 수준으로 국무부 내 조직이 운영되는 것은 중국 뿐이다. 그만큼 중국의 지위가 중요해지고 이를 다루는 것이 미국 정부 운영에 매우 핵심적인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루비오 장관은 지난 7월 말 중국조정국 수장(China Coordinator, 부차관보급)으로 조슈아 영 전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를 임명했다. 당시 닛케이 아시아는 국무부가 중국에 대한 초점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인사를 냈다고 해석했다.

이외에 국무부 내에서 한국과 관련된 분야는 여러 곳이 있다. 연수 등 교육 목적의 교류를 담당하는 공공외교 및 공공업무 부문('R 패밀리') 산하 교육 및 문화담당 부서(ECA), 북한 인권 등에 관해서는 F 패밀리의 민주주의 및 인권, 노동 부서(DRL), 북핵문제는 T 패밀리의 군비 통제 및 확산 억제 부서(ACN), 대북제재 등은 E 패밀리의 경제, 에너지, 비즈니스 부서(EEB)에서 각각 담당한다.

기본적으로 국무부의 모든 업무는 미국 정부의 전 영역과 상당부분 겹친다. 각 부처의 업무 중 대내적인 역할은 해당 부처가 주관하되, 대외적인 역할은 반드시 국무부와 함께, 또 국무부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 미국 정부의 운영 방식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국과 공동 이슈가 있을 경우, 담당 부처는 물론 국무부 내 담당 부서와도 함께 협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셧다운 여파에 추가 구조조정 압박까지
지난 1일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정지)이 시작되면서 국무부 직원들도 상당부분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무급 휴직을 할 경우에도 나중에 셧다운이 풀리면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다마 일부 인원은 필수근무 인력으로 분류돼 업무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방일 및 미중 정상회담 등이 예고돼 있는 만큼 동아태 담당자들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처지다. 동아태 담당 상당수 인력은 출근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을 계기로 연방 공무원을 추가 해고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은 국무부 관계자들에게 또 다른 근심거리다. 국무부 내에서는 이번 추가해고 대상에서 이미 대량해고를 겪은 국무부는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조직이 대규모로 흔들리면서 겪는 혼란이 이미 큰 가운데 추가적인 혼란으로 인한 역량 손실을 우려해서다. 직업 외교관은 법적으로도 상당한 보호를 받는 만큼, 해고 우선순위에서 비껴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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