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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시총, 삼성보다 96배 큰 AI기업들…가벼워야 살아남는다" [설지연의 독설(讀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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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3부작 쓴 송길영 작가 인터뷰

200여년 이어진 '무거운 문명' 막 내리고
AI가 쏘아올린 '가벼운 문명' 시대 도래

규모로만 경쟁하는 기업, 더는 훌륭하지 않아
민첩한 개인과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



방송인이면서 유튜버로도 활동 중인 노홍철 씨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노홍철'을 통해 뜻밖의 광고 제안을 받았다. 제안자는 광고 대행사도, 제작사도 아닌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 보통 광고는 광고주 → 광고대행사 → 제작사 → 미디어랩 → 방송사나 플랫폼 같은 매체 순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집행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메타가 직접 노홍철 씨와 계약하고, 광고 제작부터 집행까지 모든 과정을 맡은 것이다.

촬영 방식도 전통적인 광고와는 달랐다. 노홍철 씨가 촬영장에 머무른 시간은 최소한이었고, 나머지는 대역 모델과 인공지능(AI) 합성 기술이 채웠다. 얼굴을 합성하고 영상을 보정하는 작업은 대형 제작사가 아닌 숙련된 1인 작업자가 단기간에 해냈다. 결과적으로 광고 대행사나 제작사 없이, 플랫폼과 개인이 바로 연결되고 AI가 과정을 단축한 셈이다. 방송국 같은 플랫폼과 광고 모델이 직접 협업하는 새로운 방식이 시장에 나타난 것이다.

송길영 작가의 신간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 언급된 사례다. 송 작가는 이런 변화를 두고 '무거운 문명'에서 '가벼운 문명'으로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대규모 인력과 복잡한 절차에 의존하던 시대가 저물고, 소수 인원과 단순한 구조, 빠른 의사결정으로 움직이는 '경량문명'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그의 책은 이 문명 전환기를 조망하며, 단순한 예보가 아니라 '특보'라고 할 만큼 긴급한 현실임을 짚는다.

자신을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라 소개하는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채굴하듯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왔다. 데이터 분석과 사회 변화를 연결해내는 통찰로 주목받아왔고, 이번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시대정신을 규정했다. 송 작가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만났다.

▶ 이번 책은 <시대예보> 시리즈의 세 번째 권입니다. 앞서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에서는 지능화·고령화 같은 거대한 흐름에 미리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죠. 그런데 이번 신간 '경량문명의 탄생'은 올해를 AI 대중화로 인한 문명 전환기의 시작으로 보고, 예정보다 서둘러 출간하셨다고요?


"급히 책을 낸 이유가 있습니다. AI가 일상에 침투하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해요. 작년까지만 해도 수준이 좀 부족했는데, 올해 들어 뚜렷하게 올라섰습니다. LLM(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 서비스들이 안정화됐고, 또 기존 레거시 시스템과 연동할 수 있는 기술들도 나오기 시작했죠. 펀딩도 활발히 이뤄지면서 좋은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요. 그러니 사람들이 '내 업에도 써볼까'라는 생각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겁니다. 예전에는 할루시네이션(AI의 환각) 때문에 못 믿겠다 했는데, 이제는 거짓말도 줄고, 생각보다 똑똑하네 싶으니까 '꼭 사람을 써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나오죠. 한국에서만 2000만 명이 쓰고 있다고 하잖아요. 경제활동 인구 과반이 넘어갔으니 이제 안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됐어요.

저는 보통 책을 다 쓰고 나서야 제목을 정합니다.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도 원고를 쓰고 난 뒤 이름을 붙였죠. 사람들의 패턴을 관찰한 뒤, 고민 끝에 핵심을 뽑아내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이번 책 '경량문명의 탄생'은 쓰는 도중에 제목이 나와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빨랐을까 생각해보니 시대 변화가 너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었던 거예요. 1권, 2권이 오히려 '먼 얘기'였다면, 3권은 지금 바로 닥친 '빠른 얘기'입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니 이번엔 예보가 아니라 특보라고 했습니다. 빨리 보셔야 한다는 의미죠. 게다가 이번은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맞닥뜨린 문제라 더 많은 분들이 봐야 합니다. 제가 위험하다고, 곧 큰비가 올 것 같다고 알리는 심정으로 쓴 책입니다."

▶ 확실히 올해 들어 대중들이 자신의 업무에서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느낌입니다.

"AI는 놀 때가 아니라 일할 때 써야 성장합니다. 오픈AI가 한국에서 개소식을 열 만큼 공을 들이고 있죠. 실제로 챗GPT 유료 사용자 수가 한국이 세계 3위예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자신의 업에 AI를 투입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프로들이 쓰기 시작하면 일이 달라집니다. 숙련자는 맡은 업무가 많으니 일부를 경감시킬 수 있지만, 아마추어가 하던 기초적인 일들은 아예 없어지는 거예요.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을 뽑을 이유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스탠퍼드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22~25세 채용이 13% 줄었다고 하더군요.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세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 이번 책에선 '경량문명'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문명을 생산 방식의 변화로 구분하셨는데, 최근의 흐름을 단순히 AI의 출현이 아닌 문명사적 변화로까지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명을 '인류가 공유하는 삶의 양식'으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협동의 이유가 필요하죠.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같이 하는 거고, 그것이 문화적 습관이나 의식으로 굳어져 온 겁니다. 저는 그 과정이 곧 '생산'이라 봤어요. 지금까지는 생산이 집적되었다면, 이제는 흩어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게 무서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전국에 산업단지를 짓고, 도로를 깔고, 전기를 넣으면서 '교통 체증도 같이 감내하자'며 살아왔습니다. 출퇴근, 점심시간, 집단생활이 당연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가장 싫어했던 게 '애국 조회'였어요. 일찍 오라고 하고, '앞으로나란히'를 시키며 규율을 강조했죠. 나중에 알게 된 건, 그게 공장 시스템에 맞춰 순응적 인간을 만드는 훈련이었다는 겁니다.

최근 가장 큰 충격은 영상 업계였습니다. VFX(시각효과) 같은 특수효과는 수백억 원이 드는데, 펀딩이 막히니 이제 AI를 활용해 후반 작업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KT 주최 AI 영화제에서도 주류 감독들이 이 방법을 테스트하고 있더군요. 이미 제작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변화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산업에서 동시에 밀려온다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책에서 최근 기업들의 변화를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작가님이 보신 경량문명 이전의 '무거운 문명'의 종말은 어떤 징후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나요?

"제가 직접 AI를 활용해 작업을 해본 지 벌써 3년째인데요. 쓸 수 있는 툴이 계속 늘어나고, 제 작업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협업 툴, 데이터 수집, 강연 자료 제작 같은 데서 써보면 확실히 효율이 다릅니다. 심지어 요즘은 딕테이션 소프트웨어로 원고를 읽어주게 하거나, TTS(음성 합성)로 목소리를 합성해 토론 자료를 만들기도 하죠. 정확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최근엔 원고 리뷰할 때도 에디터와 사람이 직접 읽는 대신, 소프트웨어에 맡겼습니다. 한 달에 1만5000 원 정도 비용을 내는데, 이제는 사람이 읽는 걸 도리어 못 견디겠더라고요. 사람은 실수하지만, 기계는 틀리지 않으니까요. 이런 변화를 직접 경험하다 보니, '이건 전방위로 밀려오겠구나' 하는 위기감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 기업도 이제 가벼워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인원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구성원이 많아도 각자가 책임과 권한을 갖고 길드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면 이미 경량 문명에 가까운 겁니다. 반대로 20명밖에 안 되더라도 보고 단계가 복잡하다면 그건 여전히 중량 문명이겠죠. 핵심은 단계를 얼마나 축약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층층이 보고하고, 규제·검열·결재를 거치는 구조라면 그만큼 리드타임이 늘어나고 지연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무한 지연에 빠지게 되죠. 경량 문명이란 결국 사람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구조가 단순해 민첩하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문명을 말하는 겁니다."


▶ 그 '가벼움, 기민함'이라는 건 빠른 AI 전환, 결국 인력 감축을 포함하는 개념일 텐데요.

"네, 지금의 방식보다 단계가 축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 가볍게 움직여온 기업이라면 줄일 게 없겠지만, 전통적인 도제식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 조직은 다르죠. 신입이 들어오면 선배가 3년쯤 돌보고, 어느 정도 되면 다시 후배를 맡기는 방식. 이 구조는 단계마다 권한이 중첩돼 있어서, 사람이 곧 지연의 원인이 됩니다. 결국 그 단계를 빼고 싶어지는 거죠.

슬픈 건, 실제 현장에서 갈등이 크다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다녀온 기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오래 해왔고, 부서장으로서 권한이 있는데 왜 이걸 내놓으라 하느냐'는 반발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하지만 경쟁사가 이미 변하고 있다면 '할 수 없어요, 하셔야 해요'라는 답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개인도 경쟁자로 떠오릅니다. 프로슈머 서비스로 개인이 AI를 활용해 일하면, 기업과 직접 경쟁하게 되거든요. 많은 작업에서 개인은 훨씬 가볍고 빠르기 때문에 기업보다 우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조직은 기업 간 경쟁뿐 아니라 '개인'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까지 맞닥뜨리게 된 겁니다."

▶ 그렇다면 고용을 늘려 부의 재분배와 세수에 기여하던 기업의 사회적 효용 가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기업 가치의 기준도 재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창업가들 사이에 '린AI 리더보드'가 주목받고 있어요. AI를 활용한 혁신을 거듭해 1인당 매출이 가장 큰 기업들의 순위를 소개하는 사이트인데요. 이 사이트가 주목한 기업들은 설립 5년 이내 회사들입니다. 그래야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을 것이라 보는 거죠. 여기서 흥미로운 지표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인당 시가총액'이에요. 지금까지는 매출이나 이익,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지표로만 기업 가치를 평가했잖아요. 직원 수가 많다는 건 힘이 세다는 뜻이라 긍정적으로 여겼고요.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인원이 적을수록 더 가치 있다'는 관점이 등장한 겁니다.

실제로 그 사이트에 나온 '5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는 50인 이하 기업' 43개의 1인당 시가총액 평균 내보니, 1633억원이었어요. 같은 날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약 447조원)을 26만명이 넘는 글로벌 구성원 수로 나누면 1인당 17억원 정도가 나와요. 앞의 기업들과 96배가 넘는 차이가 발생하죠. 이 지표가 주주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하면 기업은 자연스럽게 압박을 받습니다. 매출·이익을 늘리든, 인원을 줄이든 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거죠.

인원이 적을수록 인당 받을 수 있는 분배도 커집니다. 해외 AI 기업들에선 직원 한 명이 수백억, 심지어 천억원 단위 보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 결과 우수 인재들이 인원이 적은 기업으로 몰리고, 반대로 인원이 많은 기업은 좋은 인재를 데려오기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이게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연쇄 반응처럼 번지는 거예요. 그러니 기업의 가치 기준 역시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거죠."

▶ 우리는 기업의 역할 중 하나로 늘 '고용 창출'을 이야기해왔지만, 이제는 고용을 많이 창출하는 기업이 더 이상 훌륭하지 않다는 거네요.

"고용을 늘리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겠죠. 하지만 이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 가벼운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생산=인력 증가'라는 전제가 상수였는데, 그것이 깨졌을 때 기존의 법칙과 제도를 어떻게 다시 설계해야 할지가 숙제가 됩니다. 지난 200년 동안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이기에 더 낯설게 다가오겠죠.

<출퇴근의 역사>(원제: 러시아워)라는 책을 보면, 출퇴근은 불과 200년 전 공장과 기계의 시대에 생겨난 제도라고 합니다. 그 이전의 농부는 집 앞 땅에서 바로 일했지만,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고, 교통 체증과 공해가 심해지자 기차가 등장하고 표준시가 만들어졌다고 해요. 결국 출퇴근은 산업 문명이 만든 장치였던 거죠. 그런데 지금 그 200년의 역사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도로, 교통, 식당, 휴게 시설 같은 도시의 풍경도 달라질 겁니다. 한곳에 몰려 점심을 먹느라 20분씩 줄 서던 시대가 아니라, 각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게 되는 시대가 오는 거죠. 자본도 더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고, 지속가능성도 높아질 겁니다. 지난 200년간 쌓아온 무거운 시스템이 오히려 싱크홀처럼 작동해온 건지도 모릅니다."

▶ 그런데 AI의 고도화를 국가가 방치할까요? 수많은 실업자가 생기고, 결국 누군가는 세금을 내야 하는데… 각국 정부들이 어느 정도 선에서 개발을 규제하지 않을까요? 법과 규제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건 결국 '서로를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가 규제를 엄격히 해도 다른 나라가 그대로 두면 그 첫 번째 국가는 산업 경쟁력에서 밀려납니다. 그래서 국가들끼리 끝까지 서로 못 믿는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윤리적으로, 인간성에 반하는 부분, 예컨대 명백히 해롭고 인간 존엄에 어긋나는 행동은 제어할 수 있겠죠. 기술 경쟁력과 관련된 부분은 국가 간 경쟁 때문에 계속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리·안전 기준은 가능한 한도에서 국제적 합의로 마련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개발과 응용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 하지만 당장도 한국에서는 법과 규제 때문에 AI 개발에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기술·자원·환경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아직은 초창기라 승패를 논하기엔 이른 면도 있고요. 미국, 중국에 이어 'AI 3강'을 꿈꾸는 나라가 많습니다. 그 얘기는 곧 1·2등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는 뜻이에요. 연구개발 역량, 자원, 데이터, 인재가 모두 그쪽에 쏠려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걸 다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 스위트 스폿을 찾아 거기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 자율주행차처럼, 기술은 이미 가능한데 법과 제도 때문에 도입이 더딘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사회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을 거라는 반론도 있는데요.

"그런 주장은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변화가 더 빨리 오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우리는 보통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지만, 그 계획대로 잘 안되죠. 특히 돈이 걸린 분야, 투자 대비 수익이 확실한 영역에서는 한순간에 바뀝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인간이라는 변수가 덜 관여하기 때문에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겁니다. 그렇게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에요.

사실 AI의 빠른 발전이 인류 전체에겐 이득일 수 있어요. 난치병 치료 같은 영역에선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실업이 생깁니다. '새로운 직업이 또 나오니까 괜찮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문제는 그사이 전환기의 고통이에요. 작용·반작용처럼 결국 대안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때 내가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저는 '결국엔 잘 될 거다'라는 막연한 낙관은 위험하다고 봐요. 차라리 지금 당장 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게 훨씬 현실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생산방식의 변화는 양극화를 부르고, 그 과정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대거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요.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작가님도 "내 예보가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걸 우려하며 썼다"라고도 하셨는데요. 사회는 어떤 정책적 준비를 해야 할까요?

"지금 협업의 기본 단위는 '사회'라기보다는 '조직들의 합'입니다. 정책도 정부가 모든 걸 직접 하는 게 아니라, 가이드라인과 인센티브를 주고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죠. 문제는 조직이 대의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생존이 걸려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요즘 기업들이 신입을 잘 뽑지 않습니다. 그러면 점차 중견 인력이 사라지게 되죠. '씨를 뿌려야 벼가 자란다'는 말처럼, 신입이 없으면 미래 인력도 없는 건데, 기업 입장에선 신입을 키울 여력이 없습니다. 뽑아서 가르쳤더니 다른 회사로 떠나버린다든가, 처음부터 교육 비용이 너무 크다든가, 혹은 옆 회사가 더 가볍게 움직이면서 경쟁이 불리해지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이렇게 되면 특정 시기에 졸업한 사람들은 아예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이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하거나, 사려 깊게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겠죠. 결국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그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국가가 기업에 '신입을 뽑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문제 아닙니까.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먼저 필요한 건 사고 전환입니다. '대량 고용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와야만 대기업의 신입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당연한 전제였죠. 실제로 1996년에 현대차가 2200명을, 대우가 1500명을 한 해에 뽑았습니다. 그땐 수만 명이 한꺼번에 채용되니 공채만 준비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전 방식의 공채는 이미 사라지고 있어요. 앞으로는 '업무 면접'이 필수입니다. 인성이 아니라, 그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준비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아르바이트·인턴 경험이든, 프로젝트든, 작은 창업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 업무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처럼 '혹시 될지도 몰라'라는 천수답식 준비는 위험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준비가 필요한 겁니다."

▶ AI가 고도화되면 결국 기본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일자리는 줄고 생산성은 커지는데, 기업이 굴러가려면 소비가 필요하고, 그래서 기본소득을 배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요. 이는 사회주의 배급제로 귀결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이 요구될 수 있다는 얘기일 텐데요.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죠. AI가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홍채 인식 기반의 ‘월드코인’ 같은 아이디어까지 내놨습니다. 다소 급진적이지만 하나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실행입니다. 논의가 시작되면 찬성·반대·대안 모색이 뒤섞이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합니다. 기존 복지 제도를 없앨 것인지,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세금은 어떻게 걷을 것인지. 기업이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에 과연 조세가 가능할지 같은 수많은 쟁점이 충돌하게 되겠죠. 따라서 단기간에 기본사회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걸 믿기엔 위험한 발상일 수 있고요. 사회 구성원들이 여러 방식으로 조정을 거칠 테니, 그보다는 지금의 AI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훨씬 현실적인 대응이겠죠."

▶ 책의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챕터가 흥미로웠습니다. 농작물 대량생산과 새벽 배송이 가능해졌는데도 신선식품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우위를 차지하고, 유기농이나 ‘자연스러움’에 대한 욕구는 계속 살아있다고 하셨죠. 발효가 주목받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맞습니다. 긴 시간 숙성이 필요한 와인·위스키 같은 건 비균질적이고,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섬세하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건 인간의 감각이죠. 그런 영역은 AI가 와도 인간이 우위를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 같은 맥락에서 '섬세함'을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강조했습니다.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을 쓰는 직업은 로봇 시대에도 가치가 있다고 하셨죠. 또 AI가 효율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충실함'으로 존재 의미를 밝히게 된다고 썼습니다. 그 대상 역시 섬세한 인간을 향한다고요. 결국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의 핵심은 '섬세함'이라고 보는 건가요?

"만약 AI가 섬세함을 수치화하고 규정할 수 있다면 따라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상대에 대한 배려, 감각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이죠. 예를 들어 향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 추천한 차는 괜히 더 맛있게 느껴지잖아요. 꾸준히 수련하면 초자연적인 단계의 미묘한 차이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들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우라'입니다. 오랜 경험이 쌓였겠지, 인생이 들어 있겠지 그런 믿음이 생기면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의지하고 싶고, 심지어는 영적인 기대까지 하게 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가 생기고, 그것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역량이 될 수 있겠죠."

▶ AI 시대에 '축적된 시간'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쓰신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시간이 생산의 소중한 자원으로 쓰이는 결과물들은 그 과정을 당길 수도, 당겨서도 안 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는 것인데요. 명상, 요가, 저속노화의 인기도 결국 '시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하셨어요.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젊은 분들이 의미를 투여할 대상을 찾다가, 결국 '시간'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걸 발견한 것 같아요. 모든 게 복제 가능한 시대지만, 수십 년간의 축적은 흉내 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헤리티지나 ‘since 몇 년’ 같은 시간의 무게에 가치를 부여하는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는 '진정성'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잖아요. 그걸 기꺼이 쏟아부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인식하는 거죠.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그 시간이 결국 자기 서사 속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는 거죠.

예전에 제가 '고양이 좋아하세요? 좋아하면 오래 키워보세요. 10년쯤 하면 대가가 될 수도 있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고양이를 오래 키우며 콘텐츠를 만든 사람들이 대박을 냈습니다. 개그맨 송하빈 씨의 유튜브 채널 '언더월드'가 대표적이죠. 고양이 춘봉이와 첨지가 나오는데 구독자 수가 149만이에요. 그분은 고양이 두 마리 덕에 널찍한 집으로 이사 가셨대요. 제가 던진 농담이 진담이 된 셈이에요.

결국 중요한 교훈은 '아무거나 오래 해보라'는 겁니다. 실제로 아무거나 오래 한 사람들이 지금 돈을 벌고 있어요.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좋아서, 10년을 해도 지치지 않을 만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감각이 깨어나고, 알아보는 눈이 생기면서 조예가 깊어집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 기쁨을 원하죠."

▶ 경량문명 사회에서 눈여겨보면 좋은 키워드로 '외로움'을 꼽았습니다.

"비즈니스에는 늘 따라오는 흐름이 있습니다. 사회가 분화되면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워지면 다시 외로워지는 식이죠. 누가 '밥이나 먹자'고 부르면 귀찮아하다가도, 막상 얼굴을 안 보면 외로워지는 것처럼요. 지금은 혼자 밥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는 시대잖아요. 이런 정반합의 움직임이 반복됩니다. 사회가 더 분화될수록 외로움은 커지고, 그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게 될 겁니다. 과거처럼 끈끈하고 위계적인 관계는 힘들었으니, 앞으로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혹은 대안 가족이나 새로운 형태의 크루 같은 관계가 더 확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경량문명의 특징으로 미디어 지형 변화도 제시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대신, 크리에이터에겐 ‘적절한 규모의 팬덤’이 중요해졌다고 했습니다. 최근 자작곡 ‘Not a Dream’으로 주목받은 송소희 씨 사례를 들기도 하셨어요. 그가 자작곡을 부르며 주체적 자아의 행복이 표정에 자연스레 드러난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호응했다는 건데요. 유튜브엔 이렇게 창작자의 의지와 자아 자체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광고에도 관대하고, '돈 더 많이 벌어라, 행복하라'는 댓글도 보입니다.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할 건 팬덤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관계'입니다. 순간 소비되는 인기가 아니라,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이 꾸준히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죠. 금전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더 큰 가치는 안정감입니다. 팬은 구독을 통해 '당신의 태도와 삶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고, 결국 잘 살아야 그 응원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대중은 잔인합니다. 올려놓고, 마음에 안 들면 한순간에 떨어뜨리죠. 하지만 팬은 다릅니다. 힘들 때도 응원합니다.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팬은 크게 늘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한정돼 있으니까요.

송소희 씨를 보세요. 어린 시절엔 '국악 신동'으로 소비됐습니다. 외모나 재능으로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자작곡으로 무대에 서며 판소리 색채를 더한 자신만의 음악을 크루와 함께 만들어갑니다. 사람들은 그의 무대에서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았고, 그 순간 송소희 씨는 스스로 업을 만든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로 서게 되는 거죠. 팬들이 그를 더 지지하는 이유도 돈벌이가 아니라 업(業)에 대한 진정성을 보기 때문이죠.

팬덤은 일정 수준만 있어도 생존 조건이 됩니다. 물론 많을수록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수는 급증하는데 인구는 한정돼 있으니까요. 지상파 몇 채널이 스타를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채널이 무한히 분화된 지금, 거대한 ‘매스 팬덤’ 대신 각자의 작은 팬덤으로 나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 경량문명 시대에는 평생 한 가지 직업만 이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자기 개발이 필요할까요?

"요즘은 자격증을 너무 많이 따다 보니, 아예 자격증 모아두는 앨범까지 쿠팡에서 팔더군요. 그런데 중요한 건 '무슨 기술을 배울까'가 아니라 '내 업을 어떻게 정의할까'입니다. 예를 들어 화초를 키우는 게 내 취미고 업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싶다면, 비료 관리, 병충해 방지, 햇빛 조절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맞춰 IoT(사물 인터넷) 스마트팜 기술을 배우거나, 커튼을 AI로 제어해 조도를 맞추는 장치를 만들 수도 있겠죠. 이처럼 목표가 먼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술을 모아오는 게 바람직합니다. 문제를 먼저 정하고 기술은 뒤따르는 것(Problem first, Technology second)이라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자기개발 강박 때문에 앙금 플라워 케이크, 라탄 공예, 프랑스 자수 같은 취미 클래스가 유행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취향을 탐색하는 과정 자체는 좋아요. 하지만 정해진 키트를 그대로 따라 하고 끝내버리면 금세 소모되고 말죠. 배움이 성취로 이어지려면 '내가 왜 배우는가'라는 목표와 서사가 있어야 합니다. AI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내 목표가 분명히 있으면, AI는 그것을 돕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게 나를 증강하는 거죠. 중요한 건 AI보다 나은 뭔가를 만들려는 노력, 더 나아지려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의 기록이 결국 내 서사가 되고, 삶의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목표가 분명하다면 배우는 건 무조건 좋은 일입니다. 나쁜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뿐이죠."

▶ 기술 격변기를 지나며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 무력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번아웃이나 자포자기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경량문명의 개인은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사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실용적인 결과'를 직접 만들어보는 거예요. 새로운 기술이 오면 다들 원리부터 공부하려 드는데, 인공지능의 구조나 양자역학 같은 걸 들여다봐도 이해하기 힘들죠. 효능감만 있을 뿐, 실제로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냥 가져다 한번 써보는 게 훨씬 낫습니다. 예전엔 영어 편지를 쓰려면 사전 찾아가며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AI에 물어보면 금세 답이 나오잖아요. 그 결과를 조금 고쳐보고, 다시 물어보고, 그렇게 일상에 적용하다 보면 '되네' 하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부업이나 알바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로 무언가 해서 5000원을 벌어봤다? 그게 5만 원, 50만 원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감은 실용적 성과를 통한 효능감에서 비롯됩니다. 작은 것부터 시도해보고 결과를 만들어 보시라고 권해 드려요."

▶ 독서의 가치도 언급하셨습니다. 매년 성인 독서 시장은 줄어드는 반면, 유튜브 등 SNS로 접하는 정보의 순도와 밀도는 높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점에서 책의 가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보시나요?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공부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죠. 저는 사고력과 문해력이 필수라고 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그 안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니까요. 매일 상황이 바뀌는데 맥락을 읽어야 행동도, 의사결정도 가능합니다.

그 능력을 기르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하드 텍스트'를 읽는 게 유효하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연성화된 정보는 말하자면 떠먹여 주는 방식이고, 문자로만 된 텍스트는 스스로 유추해야 하니 생각이 깊어집니다. 인간은 즉각적이고 쉬운 것을 선호해 어려운 걸 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국 흐름에 끌려가게 됩니다.

책은 그 점에서 가장 '어려운' 매체입니다. 단순한 문자열을 의미로 파악해 구조화해야 하니, 그 과정을 반복할수록 뇌가 발달합니다. 그래서 읽어야 해요. 또 하나, 현재 부가가치의 흐름을 보면 정말 의미 있는 저작물은 여전히 책으로 갑니다. 다른 글에는 돈이 잘 붙지 않아요.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를 깊이 밀고 나가 삶을 담아 세상에 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을 안 볼 수가 없는 겁니다."

▶ MZ세대 직원과의 소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리더들이 많습니다. 경량문명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특히 리더를 일컬어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연결해주는 안내자'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까.

“'삼고초려, 소수 정예'. 예전 방식은 '천 명 오세요' 하고 많이 뽑아 '잘하세요, 열심히 하세요'라는 식이었죠. 뽑아주는 쪽이 우위에 있고, '고마워해야지' 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메타만 봐도 인재 한 명에게 연봉 천억 원 이상을 제시하잖아요. 단순 오퍼레이션은 자동화되고, 진짜 크리에이티브한 인재만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삼고초려를 해야 합니다.

즉, 리더는 예전처럼 '내가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태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존중하고 기회를 연결해주는 안내자'가 돼야 합니다. 상하 관계가 성립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쉬운 건 리더 쪽입니다. 상대가 소중하다면 소중하게 대하고, 그가 원하는 걸 묻고 배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입니다."

▶ 작가님의 추천 책이 궁금합니다.


1.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핵개인의 시대, 규범을 넘어 자기 언어와 감수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립해가는 새로운 개인의 기록을 보여준다.

2. <슬픔의 방문> | 장일호- 풀리지 않는 질문과 슬픔 속에서 책이 쉴 자리를 만들어주며, '무엇을 읽었는가'가 곧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임을 알린다.

3. <행복의 기원> | 서은국- 행복의 본질은 성취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발견된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

4. <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한국어의 호칭 체계를 통해 한국인의 특수한 관계 맺기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5. <집단착각> | 토드 로즈- 다수가 정의한 믿음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해주며, 우리의 생각과 선택을 돌아보게 해준다.

6. <오픈 이노베이션> | 헨리 체스브로- 혁신은 이미 있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지식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데서 비롯됨을 알려준다.

7. <중산층 연대기> | 호미 카라스- 근대의 성장은 발명뿐만 아니라 연결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준다.

8. <세계 끝의 버섯> | 애나 로웬하웁트 칭- 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불안정성과 우연성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면밀히 설명한다.

9.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오가와 사야카- 도움과 보상 이전에 전제가 되는 불신이 호수성으로 오가며 어떻게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10. <월급사실주의-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남궁인 외- 직업에서 생업, 그리고 나의 업 사이를 오르내리는 ‘직장인’들의 일상을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보여준다.

■ 송길영 작가의 추천 책



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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