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만난 한 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요즘 경기가 좋지 않고, 미국의 관세 부과도 시작됐는데 어떤가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이 CEO는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세상에 어디 있겠냐”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실수에서 비롯된 재해가 회사 존망과 직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사고가 잇따르다 보니 산업재해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공개된 산업재해 관련 메시지가 예닐곱 차례나 된다. “산업재해가 거듭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은 회생이 어려울 만큼 강한 엄벌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7월 29일 국무회의)고 강조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8월 12일 국무회의)이라고 질타했다.
대통령 의중을 재빠르게 읽어낸 부처들은 경쟁적으로 제재 강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공공입찰 참여 제한과 과징금·벌금 강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면허취소, 영업정지 등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하는 수준의 고강도 페널티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권의 기업 대출 심사와 연기금의 투자 기준에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2025년을 ‘산업재해 근절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공공부문의 중대재해는 민간 못지않게 심각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3년간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93건, 사망자는 75명에 달한다. 한국전력에서만 7건의 중대재해로 11명(하청 업체 소속 10명 포함)이 목숨을 잃었다. 코레일과 산림청에서도 같은 기간 6건씩 재해가 발생해 13명이 사망했다. 문제는 이런 사고로 처벌받는 중앙행정기관장,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은 전무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수사기관의 대응이 충분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중대재해는 민간·공공을 가리지 않는다. 방심하는 사이 불시에 찾아온다. 민간 기업에 하듯 공기업을 처벌하라는 게 아니다. 처벌과 제재 만능주의보다는 각 경제주체가 사고 예방을 위해 일상적으로 노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도 정부가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노력이 중단 없이 이어져야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비극도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