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산업 정책의 그림이 인텔 지분 투자 논의로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18일(현지시간)엔 일본 소프트뱅크가 인텔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발표도 나왔습니다. 그 뒤에는 물론 트럼프 정부가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앞서 US스틸, MP머티리얼즈, 엔비디아, 보잉 등의 기업을 다룰 때부터 기존 행정부들과 달리 훨씬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보여줬는데, 이번 '인텔 부분 국유화'는 거기서도 한 발 더 나아간 시도입니다. 자유시장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인 만큼 이런 정책 방향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블룸버그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렇게 미국 정부가 직접 기업 지분 확보를 시도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이런 새로운 미국 산업 정책의 지형에서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들을 눈여겨봐야 할까요?
이 아이디어가 전해지고 나서 인텔 주가는 14일 급등했던 주가 상승분을 일부 되돌렸습니다. 칩스법 보조금을 활용한다는 건 인텔이 기존 예상보다 더 큰 정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와 역행하는 데다가, 발행주식이 10% 늘어나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점진적으로 지급되는 칩스법 보조금과 달리 자금을 한꺼번에 더 빨리 받는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습니다. 또 "미국 정부가 인텔의 최대 주주"라는 투자자 신뢰 제고 측면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겠죠.
지난 2년 간 시총이 반토막난 인텔의 미래는 오랫동안 미국 정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AI 패권 경쟁의 핵심인 첨단 반도체 생산을 TSMC, SK하이닉스, 삼성전자 같은 해외 기업에 의존한다는 것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조금이라는 ‘당근’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라는 ‘채찍’을 수단으로 해외 기업의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곤 있지만 인텔 같은 미국 기업이 본토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TSMC의 팔을 비틀어 인텔에 투자하거나 인텔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정부가 직접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심지어 백악관은 다른 칩스법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지분 방식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물론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상당히 있어 보입니다.
유나이티드스틸을 일본제철에 매각하는 딜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종의 ‘황금주’를 확보하거나, 국방부가 미국 희토류 업체 MP 머티리얼즈에 4억 달러 규모의 우선주 투자를 통해 지분 약 15%를 확보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패턴으로 볼 때 인텔은 물론 그만한 전략적 중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대해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3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미국 정부가 세계 최대 소비자라는 점을 활용해 기업과 거래할 때 단순히 세금으로 지출하지 말고 워런트(신주인수권) 또는 지분을 받아서 그 기업의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을 정부와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규모 정부 구매 또는 지원을 투자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실제 미국 정부가 대규모 구매 계약을 맺으면 해당 기업의 주가 상승에 촉매가 되는 경우가 많지요. 러트닉 장관은 그 자본 이득을 정부가 함께 누려 감세분을 충당하거나 사회보장기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재정 문제를 완화하는 데 쓸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당시엔 미국판 국부펀드의 자금 확보 방안으로 제시했던 것이었지만, 이제 트럼프식 산업 정책의 밑바탕으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엔비디아와 AMD에 중국 수출 허가를 내주는 대신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납부하도록 한 것도 이런 이익 공유의 접근법에서 나온 아이디어일 수 있습니다.
새미국안보센터의 제프리 거츠 선임연구원은 “지난 몇 달 동안 정부가 경제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훨씬 더 직접적인 ‘산업정책’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것이 현재 미국 산업 정책이 핵심 부문에서 나아가고 있는 방향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다. 반도체·희토류뿐 아니라 AI·에너지·바이오 등 전략 산업 전반에 미국 정부가 직접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월스트리트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핵심은 시장 경쟁이 훼손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정부가 민간 기업의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면서 장기적인 혁신은 저해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인텔의 경우 기술 부족과 외부 고객사의 부재라는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 데에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번스타인은 "단기적으로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축소되겠지만, 구조적인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외부 고객사 장기계약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돈만 태우고 시간만 길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미즈호의 조던 클라인 매니징디렉터도 "바이사이드의 큰손 투자자들이 인텔에 대한 숏 포지션을 정리하느라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근본적인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는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인텔이라는 미국의 상징적 회사가 TSMC와 같은 해외 기업에 점유율을 잃는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인텔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겠지만, 현재 뉴스만으로는 매수 베팅을 하기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가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등의 기업들이 인텔과 함께 생산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지만, 인텔이 TSMC 수준의 수율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미국 전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미국 기술 산업의 밑바탕인 시장 경쟁 기반 모델을 스스로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DA 데이빗슨의 길 루리아 테크 총괄은 "우리 모두 자본주의자로서 시장 경쟁을 우선시하지만, 지금은 AI 경쟁력의 핵심인 반도체 생산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너무 높은 '국가 안보 위기' 상태인 만큼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정책적 수혜를 받고 있는 인텔과 보잉, MP머티리얼즈를 제외하면 글로벌파운드리, 앰코, 울프스피드, 퍼스트솔라, 센트러스에너지, 마이크론, 스카이워터 등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기업들이 반드시 정답은 아닙니다. 트럼프 정부의 산업 정책이 장기적으로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도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미 패턴이 명확해진 트럼프식 경제 정책의 큰 방향성을 따라 수혜주를 찾는 투자자라면 '아메리카 퍼스트'의 테마는 앞으로도 주목해야 합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