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부터 잇따른 건설현장 사망사고로 업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사회적 파장을 키웠고, 고용노동부는 전국 수십 개 현장에 대한 불시 감독에 나섰다. 발주처와 시공사 모두가 긴장 속에 있다.
그러나 숫자는 냉정하다. 2024년 건설업 사망자는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2025년 1분기에도 여전히 건설업이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의 사망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은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최저가 경쟁 구조가 만드는 악순환
현장에서 오래 일해온 업계 종사자들은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최저가 경쟁 구조’다. 하도급사는 수주를 위해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이 안전 인력과 장비다. 원도급사는 안전 확보를 조건으로 내세우지만, 그 비용이 하도급사에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돼 있다. 결국 안전은 ‘추가 옵션’처럼 취급되고, 예산은 서류 속 숫자일 뿐 실제 현장에서 온전히 집행되지 않는다.
정부는 2025년부터 안전관리비 요율을 인상하고, 스마트 안전장비를 안전관리비 집행 항목에 포함시켰다. 장비 구매 보조 비율도 2026년까지 100%로 확대할 계획이다.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안전비를 어떻게 확보하고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여전히 부족하다.
해법 1: 안전관리비 ‘별도계상’ 법제화
안전관리비를 낙찰가와 분리해 계약금액의 일정 비율로 별도계상하도록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 발주처가 낙찰가와 무관하게 이 금액을 별도로 지급하면, 최저가 경쟁에서 안전비가 깎이는 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집행 과정은 에스크로 계좌로 관리하고, 사용 내역을 전면 공개·정산하도록 해야 한다.
해법 2: 안전관리비 ‘비과세’와 세제 인센티브
안전관리비를 비과세 항목으로 지정하거나 전액 필요경비로 인정해 세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특히 안전장비와 교육비, 그리고 안전감리를 수행하는 인력·장비 운영비 등(공사 품질과 안전을 현장에서 점검·관리하는 필수 활동)에는 가산공제를 적용해 “안전 투자=혜택”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해법 3: 원도급 ‘일괄책임제’
안전관리 인력·장비·시스템은 원도급사가 직접 확보하고 배치하는 ‘일괄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하도급사는 안전 성과 준수에 집중하게 하고, 안전비용 전가는 금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책임이 명확해지고, 안전 체계가 표준화된다.
결론적으로, 수많은 현장을 경험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지금의 구조에서는 하도급이 아무리 안전을 외쳐도 실행 여력이 없다. 원도급이 안전장비와 인력을 통합 관리하지 않으면, 하도급별로 운영 체계가 제각각이고 그 사이에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긴다. 이는 법과 제도가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최저가'는 경쟁의 방식일 뿐,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제도를 고치고, 책임을 명확히 하며, 예산을 분리하면 안전은 지킬 수 있다. 돈의 흐름을 바꾸면 현장은 바뀐다.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구조를 바꿀 때다.
글 부영물산 대표이사 노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