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표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는 2023년 신규 출자금의 8%인 6억달러(약 8300억원)를 투자해 ‘아메리칸 다이내미즘’ 펀드를 조성했다. 제조, 로봇, 우주, 방위산업 등 50개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다. 이를 소개한 a16z 웹사이트는 뜬금없이 중국의 2027년 대만 침공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을 제조하는 대만 TSMC가 중국의 손에 들어가면 반도체 공급망이 마비된다는 것이다. a16z는 이런 상황을 막을 길은 하나뿐이라고 역설한다. ‘기술에 기반한 힘을 통한 평화.’ 미국 실리콘밸리가 주도하는 하드테크 투자의 배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AI와 더불어 딥테크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체제 경쟁의 근간이 될 무기·에너지·항공우주 등이 그간 정보기술(IT) 분야에 비해 지체됐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다. 틸 창업자는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얻은 것은 140자(글자 수를 제한한 트위터를 의미)뿐”이라고 지적해 왔다. 그는 1960년대 미·소 냉전 시기 실리콘밸리에서 로켓, 초음속 항공, 원자력 발전 등 물질세계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1990년대 이후 이 같은 발전이 ‘비트의 세계’에 한정됐다고 비판했다.
스타트업들도 하드테크 투자 흐름에 맞춰 기업 체질을 바꾸고 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은 방산기업으로 탈바꿈 중이다. 올해 초 군사용 AI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에피사이를 인수한 뒤 6월 6억달러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50년대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의 투자로 탄생한 실리콘밸리의 기원을 언급하며 “이는 자연스러운 근원으로의 회귀”라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하드테크
물리적 하드웨어와 고난도 공학을 필요로 하는 방위산업·우주·인공지능(AI)·바이오 등의 기술.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와 같이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소프트테크와 달리 기술 장벽이 높아 장기간의 연구개발(R&D) 및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