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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연출한 남인우 "상상력은 개발하는 게 아닌 회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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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아르떼 살롱' 2회차 성료
가믄장아기·사천가·정년이 등 연출
남인우, 창작 의도와 비하인드 공유
"예술가로서 내 원동력은 짜증"

"어린 시절에 소꿉놀이 한 번도 안 한 분 없으시죠? 여러분, 상상력은 개발되는 게 아니라 회복하는 겁니다."



지난 6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열린 문화예술 강연 프로그램 '아르떼 살롱'의 두 번째 시간. 이날 연사로 나선 남인우 연출가는 공연예술의 본질인 상상력을 회복해나간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르떼 살롱의 문을 열었다. 남 연출은 "상상은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진심을 다해 내 마음을 이입하는 것"이라며 "현실에서 느끼기 어려운 다양한 감각을 꺼내 다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경계의 아슬아슬한 탄생-여성으로 예술가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남 연출이 만든 여성 서사 작품의 비하인드와 연출 의도 등을 되짚고 예술교육의 가치를 사유해보는 시간으로 밀도있게 채워졌다.



남 연출은 2003년 연극 '가믄장아기'로 데뷔했다. 제주설화 바탕의 '가믄장아기'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심청이, 바리데기 등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기존 고전작품 속 여성과는 다른 캐릭터를 조명했다. 이 작품은 독일, 호주, 일본 등 세계 10개국 이상에서 초청됐다. 남 연출은 당시 한 독일 관객이 "통합의 시대에 지역성이 강한 이야기를 왜 다뤘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한국 예술의 근대화는 서양 문물이 급격히 유입되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조차 갖지 못한 채 이뤄졌어요. 나를 알아야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것을 이야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 연출은 작품을 통해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해왔다.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한 '사천가'(2007년)와 '억척가'(2011년)가 대표적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이자람 씨가 각색하고 제가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원작에선 주인공이 매춘부로 나와요. 대부분의 연극에서 여성은 어머니, 악녀, 매춘부 정도로 등장하죠. 짜증나지 않나요? 저는 매춘부는 싫다고 하고 인물을 바꿨어요." 그는 "예술가로서 내 원동력은 '짜증'인 것 같다"며 "전통의 이야기를 현대로 데려올 때는 반드시 현대적 감각과 감수성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년 국립창극단의 창극 '정년이'를 연출했을 당시 이야기도 들려줬다. '정년이' 구상 과정을 담은 노트와 무대 도면, 의상 전환표 등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연출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재다능한 여성 소리꾼들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었다"며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여성 소리꾼들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냈다"고 했다. 이어 "원작인 웹툰 '정년이'는 분량이 많고 결말도 나오지 않았던 상태라 자체적으로 다듬고 결말도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남 연출은 공연예술 장르에서 연출의 자질에 대해 "미적 감각뿐 아니라 '극장'이라는 하드웨어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또 다른 하드웨어인 '배우'도 그 순간만큼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온 마음을 다해 미워한다"며 "배우와 수많은 스탭들의 도움 없이는 공연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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