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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도시 파고든 다섯 개의 낯선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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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대구 5인 단체전
김세은, 김정은, 문이삭, 이승애, 황원해
‘흐르는 풍경, 쌓인 형태’

전시장 한가운데 우뚝 선 나무 한 그루. 누군가 이리저리 어루만지다 입술을 갖다 대니 '휘-이익' 휘파람 소리가 난다. 달항아리를 닮은 돌덩어리에 앉은 사람은 벽에 걸린 작품을 응시한다. 높은 산 정상에서나 보던 망원경에 얼굴을 묻은 이도 있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을 한데 모아놓은 대구 중구 우손갤러리 대구의 풍경이다.



우손갤러리 대구에서는 도시의 풍경을 담은 전시 ‘흐르는 풍경, 쌓인 형태’가 열리고 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신선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는 도시의 보편적 단면을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전시를 기획한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는 이질적이면서도 점차 같은 풍경을 공유하는 도시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과거 농촌과 도시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망 등이 발전하면서 연결된 도시들은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공유하게 됐죠. 이처럼 물리적 형태가 더 이상 도시의 특성을 규정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심리적 풍경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김세은, 김정은, 문이삭, 이승애, 황원해 다섯 명의 동시대 작가가 서로의 시선을 공유한다. 참여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작품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이중 전시장에서 만난 문이삭, 김정은, 이승애 작가가 작품의 이해를 돕는 설명을 보탰다.

전시장 1층에 자리 잡은 문이삭 작가 작품의 정식 명칭은 ‘Bust-바람길’ 시리즈다. 나무 기둥 위아래에 점토로 살을 붙여 만든 이 작업을 작가는 '흙피리'라 표현했다. "흙피리는 목소리밖에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만든 작품입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소리가 떠올랐어요. 소리라는 것은 빈 공간의 증명이기도 하니까요."



문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20가지 종류의 점토를 섞었다. 2층 전시장에 놓여 있는 ‘백월’ 연작 역시 16가지의 백색 점토를 사용했다고. 백월 연작은 두 개의 바가지 형태를 만든 후 이어붙여 항아리 모양을 완성했다. “서로 다른 성질의 점토를 섞어서 가마에 구우면 수축되거나 형태가 깨지기도 해요. 누군가는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찢어지고 흐트러진 모습이 흙이 가진 재료의 특성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흑연과 종이 단 두 가지의 재료를 사용하는 이승애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은 파괴와 탄생을 거듭한다. 캄캄한 2층 전시장의 한쪽 벽면에 작품을 오려내고 재배치해 만든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있다. 이 작가의 재료는 한정적일지라도 표현 방식은 다양하다. 드로잉부터 오려내기, 탁본, 화면 위 재배치, 애니메이션화 등 여러 형태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번 전시에는 팬데믹 상황으로 영국 런던의 작업실로 이동할 수 없었던 경험을 녹여냈다. 작가가 작업하던 서울 작업실과 영국 작업실의 시공간을 한 화면에 병치시키거나 교차시키고, 합체 만들어진 새로운 형상을 선보인다.



김정은 작가는 자신의 이동 경험을 시각적 형태로 변환한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무빙 마운틴(Moving Mountain)’은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처럼 자신이 남긴 이동의 흔적을 표현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무빙 마운틴은 형상화된 저의 이동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업의 첫 단계는 지도를 펼쳐, 하루 동안 머물거나 지나간 장소에 점을 찍는 것에서 시작돼요. 이 점들을 선으로 잇고, 선이 모여 면이 되면, 한 달간 모아 오려냅니다. 마지막에는 제가 실제로 걸었던 지역의 땅이나 산을 상상하며 입체적인 형태로 완성하게 됩니다.”

이밖에도 아스팔트가 벗겨진 도로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김세은 작가의 회화와 LA공항의 코드쉐어명과 뉴욕, 독일 등에서의 경험을 담은 황원해 작가의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08.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