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미국 측 반응은 냉랭하다. 러트닉 장관은 “모든 것을 가져오라”며 공개적으로 한국 협상단을 압박했고,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왜 한국과의 새로운 협정이 필요한지 납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측 제안이 미국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앞서 일본은 5500억달러, 유럽연합(EU)은 60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내세워 상호관세를 25~30%에서 15%로 낮췄다. 자국 시장 개방과 대규모 에너지·방산 구매가 포함된 ‘빅딜’ 패키지를 함께 제시했다.
미국 측은 한국의 대미 투자액으로 4000억달러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한국이 제안한 투자 총액은 1000억~2000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의 경제 규모와 대미 무역흑자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미국이 기대하는 마지노선은 3000억달러 안팎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허정 국제통상학회장은 “러트닉 장관이 원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고 갈 패널에 적을 투자 총액과 관세율 숫자 딱 2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최종 수정할 숫자가 일단 러트닉 장관의 눈높이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선(先) 총액 제시, 후(後) 각론 논의’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정부가 산업별 협력 방안 설명 등 각론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총액 제시에 초점을 맞춰 접근 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확정된 투자 총액 없이 ‘이게 최선’이라는 메시지를 들고 베선트를 만나면 미국 측은 협상 종료로 간주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럴 경우 15%가 아니라 20% 관세 수준에서 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 총액을 대폭 끌어올리기 어렵다면 농축산물 시장 개방, 온라인 플랫폼 규제 유예,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허용,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등을 과감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협상 유예다. 일본, EU와 비교해 고위급 조율이나 정상 간 접촉이 부족했던 점을 감안해 이번 회의에서 무리하게 결론을 내기보다는 8~9월께 대통령 정상회담을 통해 승부수를 던지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의견이다.
최병일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 원장은 “정상회담이라는 큰 틀 안에서 투자 총액, 관세, 산업 전략을 종합 조율하는 접근이 실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은/김리안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