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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청년, 멈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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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시연 숙명여대 총장

학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휴학하면서 생각 좀 해보려고요.”

“부모님은 OO하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감하고 안타깝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시대,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년들의 고백은 한 개인의 혼란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교육과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존재의 방향’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최근 통계에서 낯설지만 쓸쓸한 단어가 보인다. ‘쉬었음’. 재학 중도, 구직 중도, 취업 상태도 아닌 채 42만 명의 청년이 스스로 ‘쉬었음’이라고 적었다. 그들은 정말 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멈춰선 걸까?

이 선택의 뒤에는 깊은 피로가 있다. 아무리 준비해도 쉽게 닿지 않는 기회의 벽, 계속되는 스펙 경쟁, 그리고 침묵뿐인 노동시장. 더 이상 탈락하고 싶지 않고 비교당하고 싶지 않아 청년들은 스스로 멈추고 그것을 ‘쉬었음’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능력이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넘치는 준비와 철저한 자기관리 속에서도 연결되지 않는 사회 구조 안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처럼 “나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나무였으나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한 채 시들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가능성을 말했지만 그 뿌리를 내릴 토양은 제공하지 못했다.

현대사회는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오히려 더 큰 불안을 안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인은 선택의 자유는 가졌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실제 삶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자랐지만 그 가능성이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현실 앞에 멈춰섰다. 청년 85%가 “일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답했다는 한 설문조사는 청년들이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질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 고용의 위기는 곧 존재 인정의 위기다.

그렇다면 교육은 이들에게 어디로 가는 길을 제시했는가. 이제는 ‘왜 배우는가’를 넘어 ‘배운 다음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청년의 멈춤은 사회가 설계한 길이 끊어졌다는 증거다. 배움은 있었지만 그 배움이 닿을 곳이 사라진 사회. 목적 없는 경쟁, 결과 없는 준비, 연결되지 않는 과정들 속에서 청년들은 방향을 잃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자리 숫자가 아니다. 청년이 자신의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일’을 설계하는 일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복원력,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걷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청년이 멈춘 사회는 결국 모두가 멈춘 사회다. 지금 우리는 청년이 뿌리내릴 자리를 사회의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오늘의 신문 - 2025.08.0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