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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한국' 운명의 4일…'한·미 협상'서 최악 관세 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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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 시한 D-4

구윤철·베선트, 이번주 담판
실질적 협상 30·31일 이틀뿐
"고관세 맞으면 경제 직격탄"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30일 또는 31일 미국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만나 한국 제조업의 명운을 건 막판 관세 협상을 벌인다. 미국이 25%의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8월 1일을 코앞에 두고 펼치는 ‘벼랑 끝 협상’이다.

2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전날 미국 측은 이번주에 구 부총리와 베선트 장관 간 한·미 재무장관 통상 협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관세 부과일 하루 전인 31일에 만나는 일정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선트 장관은 당초 지난 25일로 예정된 ‘한·미 2+2(재무+통상장관) 통상 협의’를 하루 앞두고 돌연 연기했다.

한국은 주요국 중 가장 마지막까지 협상을 벌여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 22일 협상을 마쳤고, 유럽연합(EU)은 27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협상을 벌인다. 28∼29일 스웨덴에서는 베선트 장관 등이 참여하는 미·중 고위급 무역 회담이 예정돼 있다.

정부는 미국이 ‘자국 제조업 부활’을 관세 전쟁 목표로 삼은 만큼 조선업과 반도체를 포함한 한·미 제조업 협력 카드를 지렛대로 삼아 남은 기간 전방위 협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방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계속 미국에 머물며 수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김 장관은 25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뉴욕 자택에서 늦은 밤까지 협상을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협상에 실패해 미국이 예고한 고율 상호관세(25%)가 부과되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인 수출이 하반기부터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제조업 협력뿐 아니라 소고기·쌀 시장 개방 등 모든 카드를 동원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최악 관세 피하려면…"반도체·조선 지렛대, 美제조업 기여 강조해야"
시한 막판까지 몰린 한국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6일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기적은 쉽게 말해 ABC”라고 했다. 아메리카퍼스트(A) 정책이 ‘블루칼라(Blue collar) 붐’을 일으켰고, 설비투자(Capex)로 이어져 새로운 황금시대를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전쟁의 목적이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현금 마련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음달 1일 미국의 관세 부과를 앞두고 벼랑 끝 협상을 벌이는 한국은 제조업 협력을 관세 협상의 최대 지렛대로 삼는 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원하는 제조업 패권 회복에 한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비관세 장벽도 과감하게 철폐하겠다는 제안을 던질 때라고 조언했다.
◇제조업, 특히 조선업을 지렛대 삼아야

27일 통상당국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의 뉴욕 자택에서 밤늦게까지 협상을 벌였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등 기존보다 진전된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더 높은 수준의 투자와 시장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22일 타결된 미·일 협상 결과를 참고하되 한국의 비교 우위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처럼 5500억달러(약 760조원) 규모 투자를 약속하기는 힘든 만큼 일본이 제시하기 어려운 ‘제조업 협력 패키지’를 내세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석영 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법무법인 광장 고문)는 “미·일 협상에서 일본이 약속한 투자 분야를 살펴보면 미국이 투자받기를 원하는 제조업 분야가 한국이 강점이 가진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조선 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레버리지로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추진하는 조선·해양 산업 부활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협력 방안을 제공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병일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조업 공급망 재편 방향에 맞춰 대미 투자 패키지를 마련하되 조선업은 일본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패키지의 ‘질과 양’ 함께 고려해야
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대미 투자 패키지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허정 국제통상학회장(서강대 교수)은 “관세율을 일본 수준인 15%로 깎으려면 농산물 시장 개방과 함께 1000억달러인 대미 투자 규모를 3000억달러가량으로 키우는 제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보증하는 방식의 대미 투자펀드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일본과 같이 투자펀드 조성에 응할 땐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참여하는 틀을 마련하고, 미국이 언급하는 스냅백(약속 불이행 시 파기 조치)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애초 ‘레드라인’(협상 불가 영역)으로 삼은 소고기와 쌀 시장 개방 등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놨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감자와 콩, 돼지고기 등 수입량과 영향이 비교적 적은 품목은 과감하게 시장 개방을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관세 부과일이 다가올수록 기업의 ‘관세 공포’는 확산할 전망이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23년 기준 27.6%로 아일랜드(31.0%)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허 교수는 “협상이 결렬돼 25% 이상 상호관세가 부과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하반기 수출이 200억~300억달러 줄어들 것”이라며 “내년까지 관세가 이어진다면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대훈/남정민/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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