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출간된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는 피해자의 지위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현상을 분석한다.
현대사회는 SNS와 언론에 고통이 넘실대는 '고통의 민주주의' 사회다. 성폭력 피해 여성,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통에 대한 활자와 이미지도 여러 사람에게 퍼져나지만, 동시에 '무고'를 호소하는 가해자의 고통, '소수인종 지원 정책'을 깎아내리는 백인의 허위 발언도 무차별적으로 확산한다.
저자는 릴리 출리 아라키 런던정치경제대 교수. 책 초반에서 아라키 교수가 던져놓은 질문들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모두가 자신의 고난이 상대방의 고난보다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피해자가 범람하는 세상은 어떤 종류의 세상인가? 어떻게 세상이 지금처럼 변했을까? 그런 세상은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 더 중요하게는, 그 대가는 무엇일까?"
인권과 자유라는 대의 아래, '피해자'를 자청하는 모두는 공감과 연민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시민의 책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책은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는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부여받고, 따라서 피해자성이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성이 유용한 정치적 무기가 될 때, 피해자의 지위를 차지하는 건 남의 목소리를 짓누르며 목청을 높일 수 있는 권력자들이다. 피해자의 이름이 남용되면 진짜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워진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의 저자 김인정 저널리스트는 이 책 추천사를 통해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도둑맞은 피해자성을 되돌려줄 책"이라고 평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