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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142% '껑충'…"공짜 점심은 없네" 부메랑 된 'AI열풍'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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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데이터 센터로 인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와 송전망 구축에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는 관련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투자은행 제퍼리스에 따르면 올해 전기 유틸리티 기업들의 설비 투자(CAPEX)는 전년 대비 22.3% 증가해 212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129% 증가한 것이다. 해당 투자액 규모는 2027년에 228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1년만에 142% 뛴 전기료
제퍼리스의 전기 유틸리티 및 청정에너지 분석가는 “기업들이 경제를 '재산업화'(reindustrialise)하기 위해 발전과 송전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이 반도체·배터리 등 제조업을 다시 키우면서 첨단화에 필수인 데이터 센터 수요가 늘고 있고, 이에 따라 발전·송전 투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NEF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센터의 확산으로 미국의 전력 소비가 2035년까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압박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 요금 시민단체 파워라인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은 총 290억 달러(약 40조원)에 달하는 요금 인상안을 승인해 줄 것을 규제당국에 요청했다. 미국 전역에서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전기료 인상폭이 올 상반기에만 290억 달러에 이른다는 의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42% 증가한 수치다.

미 유틸리티 기업 내셔널그리드가 지난 4월 뉴욕 및 매사추세츠 주에서 고객당 월 최대 50달러에 이르는 전기요금 인상안을 승인받은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데이터 센터 확충에 드는 비용을 가정이나 중소기업들에 전가하게 된다면 유틸리티 기업들의 확장은 반발에 부딪히고, 이는 결국 투자 계획을 보수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클레이스의 미국 전력 및 유틸리티 분석가는 “(재산업화와 AI 열풍의)가장 장기적인 리스크는 '전기요금의 감당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AI 열풍으로 인한 전기료 부담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기요금이 전체 소비자에게 분산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대규모 전기 수요를 유발한 대형 산업 고객들에 직접 부과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소비자 권익단체들은 "왜 미국이 AI 기술 선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일반 가정이 부담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커지는 빅테크 책임론
일각에서는 발전소 옆에 데이터 센터를 지을 경우 확충해야 할 전력 인프라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히려 전체 전력망 차원에서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한 전력망 소프트웨어 기업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전력 흐름이 왜곡되고, 그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송전망 증설이 필요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데이터 센터 등 대형 수요처에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 기업들이 유틸리티의 전력 인프라 투자에 직접 비용을 지불하거나 특별 요금제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들이다. 대표적인 게 ‘대용량 부하 요금제’다.

이는 대형 전기 소비자에게 발전 및 송전 시스템에 가하는 추가 부담만큼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또 다른 유틸리티 기업 AEP오하이오는 최근 규제 당국에 매달 예상 전력 사용량의 85%를 실제 사용량과 무관하게 전기요금으로 청구하는 '데이터 센터 전용 요금제' 신설을 승인해달라고 신청했다.

미국의 한 유틸리티 업계 관계자는 "대형 고객사들에 최소 이용 기간과 매달 일정량의 에너지 사용을 확약하는 조항을 계약에 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고객들이 유틸리티 업계의 고정비 부담을 분담해주면 일반 고객의 요금을 인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또 다른 대안은 '청정에너지 전환 요금제'다. 이 방식은 데이터 센터가 유틸리티를 통해 청정에너지 구매를 약정하고, 그 자금이 새로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구조다. 지난 5월 네바다주 규제당국은 구글이 주(州)내 유틸리티 기업의 지열발전소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계약을 승인했다.

이는 한국 제도 하에서 ‘제3자 전력직접구매계약(PPA)’과 유사하다. 고객사가 한국전력과 PPA를 체결하고,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기를 한국전력이 중개해 공급하는 구조다. 한 국내 전력시장 전문가는 "대형 전기 수요자가 유발하는 송전 인프라 비용을 해당 고객에게 직접 전가하는 방향으로 제3자 PPA 제도가 활용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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