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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연속 세수오차, AI가 만병통치약?…"핑계 되면 안돼" [남정민의 정책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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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열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었습니다. 구 장관은 지난달 「AI 코리아」라는 제목의 책을 직접 출간했을 정도로 AI에 ‘진심’인 재정 전문가입니다.

구 장관이 취임 후 AI를 활용하겠다고 약속한 분야에는 세수예측이 포함돼있습니다. 세금은 예상보다 너무 많이 걷혀도, 너무 적게 걷혀도 문제입니다. 세금이 너무 많이 걷히면, 즉 세수 초과가 발생하면 의도치 않은 지출 편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세금이 너무 적게 걷히면, 즉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적자국채를 발행하거나 기금 끌어다쓰기로 연결되곤 합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2021년과 2022년에는 세수 초과, 그리고 2023년과 2024년에는 세수 결손을 내면서 4년 연속 세수예측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말해 4년 연속 수십조원 규모의 재원이 제때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구 장관은 이러한 세수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AI를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재부는 지난해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으로 AI·빅데이터 기반의 세수 추계 모형을 개발하고 있는데, 관련 작업에 속도를 내고 보다 고도화된 AI모델 개발 등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세수추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진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자, 저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민간위원들과 추계를 같이하는 방법,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기술 자문을 받아 선진국은 어떻게 (세수추계를) 하는지 등을 파악 중입니다.
또 저는 데이터를 리얼타임(실시간)으로 받아서, 그리고 AI를 장착해서 세수추계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볼 생각입니다.

-지난 17일 인사청문회 당시 구윤철 장관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사람보다 빠르게 분석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컨대 만약 법인세 예측 AI 모델을 만든다고 하면, 전체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률을 기반으로 기업들의 예상 실적을 도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각 기업들을 유형별·산업별로 나눠 실효세율을 다르게 적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AI는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을 효율적으로 해주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지, 절대적인 대안이나 만병통치약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AI를 활용했다 하더라도 세수추계는 또다시 오차가 생길 수 있으며, 그때 ‘이 정부 잘못이 아니야. AI 때문이야’라는 변명으로 AI 뒤에 숨는 일이 발생하면 곤란합니다.

관련 지적은 지난 17일 청문회에서도 실제로 나왔습니다.

AI를 활용해 세입추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 다 좋습니다. 다만 AI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알리바이가 되면 안 됩니다. AI 전환은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복잡하고 핵심적인 현안과 문제들이 ‘AI가 도입돼야 해결된다’ 라는, AI 핑계를 대는 구조로 가서는 곤란합니다. 결국에는 그시스템을 짜는 것도 사람이고, 그걸 운영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와 역량을 키워나갈 때 AI가 생산성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지난 17일 구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뿐 아니라 기재부 내부 생각도 비슷합니다.

우선 지금 세입추계는 각 세입담당, 즉 부가가치세 법인세 소득세 등 각 세입담당이 일차적으로 바텀업으로 추린 데이터에 GDP, 거시, 미시 등 종합적인 데이터를 함께 반영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한번 하는 것도 아니에요 시기별로 여러번 합니다. 그리고 국회예산정책처에도 세입추계 모델이 있어요. 두 모델의 결과치는 매년 크게 다르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과거 세수추계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델링을 고도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있었습니다. 다만 AI는 만능 해결사는 아니에요. 어떻게 학습시키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모든 요소를 100% 다 감안하는 시스템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AI를 써도 오차는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때 포인트는 ‘세수추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입니다. AI 도입 후 오차가 나면 그 책임이 AI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AI가 틀려도 정부 책임입니다. AI는 참고자료이자 수단일 뿐이에요. 이 지점을 명확하게 가져가면서 고도화된 추계 모형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입니다.

-기재부 A국장

세수추계는 나라의 가계부를 짜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세수추계가 높게 잡히면, 그만큼 재정지출도 높게 잡히고, 한번 높아진 지출 수준은 내려오기 힘듭니다.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구윤철 기재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했습니다. 구 장관이 저서에서도 적었듯 이제 AI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인 시대가 됐습니다. 세수예측은 단순 추계 모형을 넘어 늦어도 8월 중순까진 세수 추계를 마쳐야 하는 시점의 한계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AI가 4년 연속 세수예측 실패라는 기재부의 오명을 벗겨주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기를, 그래서 내년에는 ‘5년 연속 세수예측 실패’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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