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20주년 슈퍼주니어, 13년 차 방탄소년단, 11년 차 몬스타엑스·트와이스, 10년 차 블랙핑크·NCT…
'아이돌 수명 7년'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K팝 4세대를 넘어 일부 신인들이 5세대까지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2~3세대를 주름잡던 선배 팀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엔터 업계에는 아이돌 그룹이 표준전속계약서상 최대 기간인 7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마의 7년'이라는 말이 있다. 연습생 시절까지 포함해 7년보다 더 긴 시간을 한 소속사에 몸담은 이들이 활동하며 생긴 멤버 간 스타성·대중성 편차를 이겨내고 재차 다 같이 동행에 뜻을 모으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약의 장벽'은 늘 아이돌 수명을 위협해 왔고, 7년 이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멤버 전원이 재계약에 뜻을 모으며 팀을 유지하는 사례가 늘었다. 방탄소년단, 세븐틴, 트와이스, 스트레이 키즈 등이 멤버 전원 재계약을 체결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와 22년째 동행하고 있는 동방신기의 재계약도 화제가 됐다.
통상 재계약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단위로 체결하는데 '7년 재계약' 사례까지 등장했다. 에이티즈는 최근 멤버 8인 전원이 KQ엔터테인먼트와 7년 재계약을 완료해 주목받았다. 덕분에 소속사는 회사의 성공 주역인 에이티즈와 함께 상장의 꿈까지 그릴 수 있게 됐다.
KQ엔터는 에이티즈 덕에 2022년 매출액 464억원·영업이익 44억원에서 2023년 650억원·영업이익 59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매출액 1158억원·영업이익 125억원을 기록했다. 2년 사이 매출액은 약 150%, 영업이익은 약 184% 상승했다. 내년을 목표로 상장을 준비 중이다.

아이돌 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꺾이지 않는 글로벌 인기가 큰 역할을 했다. 아시아권에 머물던 K팝 한류가 북미·유럽 등으로 확장하면서 그 선두에 섰던 팀들이 꾸준히 성장 곡선을 그린 영향이 주효했다. 'K팝 투톱'으로 꼽히는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물론이고, 세븐틴·트와이스·스트레이 키즈 등이 몇 년 새 폭발적인 해외 인기를 거두어들였다.
미국 음악 및 엔터테인먼트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가 발표한 '2025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레이 키즈의 '합(合·HOP)'은 미국 내 CD 판매량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판매량 14만9000장을 기록, 더 위켄드 '허리 업 투모로우(Hurry Up Tomorrow)'에 이어 해당 차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에이티즈의 '골든 아워 : 파트3(GOLDEN HOUR : Part.3)'는 14만5000장으로 4위, 세븐틴의 '해피 버스트데이(HAPPY BURSTDAY)'는 11만6000장을 달성해 7위에 올랐다. 세븐틴이 11년 차, 스트레이 키즈와 에이티즈가 8년 차임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성과다.
트와이스는 '아이돌 수명은 짧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020년 북미에 진출한 트와이스는 5년 새 전 세계 스타디움 공연장을 누비는 글로벌 팀으로 레벨업했다.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에 함께 서고,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에 참여하는 등 글로벌 활동을 더 넓혀가고 있다. K팝 최대 음악시장인 일본은 이미 꽉 잡은 상태다.
지난 11일 정규 4집을 발표한 트와이스는 인천을 시작으로 일본 오사카·아이치·후쿠오카·도쿄, 마카오, 필리핀 불라칸,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멜버른, 대만 가오슝, 홍콩, 태국 방콕 등에서 새로운 투어를 진행한다. K팝 팬들 사이에서는 '열일의 아이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스케줄이다.

고연차에 접어든 그룹의 활약은 산업 전반의 생명력과도 직결된다.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미는 구조는 기획사에도 든든한 성장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신인 개발이 중요한 시점에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하이브에서는 방탄소년단 제이홉이 33회에 걸친 투어를 통해 전 세계 5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세븐틴도 아시아 스타디움 투어를 진행했다. 후배 그룹인 엔하이픈은 신보로 상반기 미국 내 CD 판매량 3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스타디움에 이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공연한다. 보이넥스트도어는 데뷔 2년이 채 되지 않아 밀리언셀러(앨범 판매 100만장 이상) 대열에 올랐다. 이들도 첫 단독 투어를 진행 중이다. 하이브의 1분기 매출은 50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7% 증가했다. 특히 공연 매출이 440억원에서 155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JYP는 트와이스와 스트레이 키즈가 캐시카우로 주축을 이룬 상태에서 엔믹스, 킥플립 등 후배 라인업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스트레이 키즈는 압도적인 음반 판매량에 더해 월드투어로도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이들은 K팝 역대 최다 모객 수인 220만 규모의 월드투어를 진행해 한국 가수 최초로 런던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에도 입성했다. 런던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은 6만여명을 수용하는 장소로, 6년 전 5000석 규모에서 공연하던 스트레이 키즈는 무려 12배 이상 공연장을 넓혔다.
SM은 고연차, 저연차 라인업 모두 가장 화려하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라이브 투어로 35만명을 동원하는 등 여전히 굳건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고, NCT 드림은 고척스카이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어 3일간 6만명을 동원, 고척스카이돔 최다 공연 기록(12회 단독 공연)을 달성했다. 허리 그룹인 에스파도 커리어 정점을 찍고 있으며, 저연차 라이즈·NCT 위시의 화력은 단연 눈에 띈다. 라이즈는 데뷔한 지 채 2년도 안 되어 KSPO DOME을 매진시키는 팀이 됐고, NCT 위시는 데뷔 1년 만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YG는 블랙핑크의 복귀에 맞춰 신인 라인업 확충에 열을 올릴 예정이다. 블랙핑크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에 이들의 활동 실적이 반영되는 시기를 적기로 삼아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는 총 4개의 신인 그룹 론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보이그룹 한 팀은 내년 데뷔를 목표로 준비 중이며, 걸그룹은 최대한 빨리 선보이고 싶다며 이미 4인조로 확정했다고 알린 상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