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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위기 佛 "국방비 빼고 예산 1유로도 안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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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장 급한 유럽, 복지 삭감 등 허리띠 졸라매기

佛 "빚에 짓눌리기 직전"
작년 GDP 대비 부채 비율 113%
"군비 늘리고 다른 예산은 동결"

유럽, 복지비 깎아 군비 증액
英, 장애인 수당 지급요건 강화
네덜란드, 교육비 줄여 재원 마련

프랑스 정부가 내년에 국방비를 제외한 모든 분야의 정부 지출을 동결하기로 했다. 다른 유럽 국가도 국방비를 늘리는 과정에서 복지 등 다른 정부 지출 삭감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 우선주의’로 국방비 부담을 늘려야 하는데 국가 부채 때문에 빚을 더 내기 어렵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국방비 외 정부 지출 동결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는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26년 예산 편성 방침을 밝혔다. 바이루 총리는 “프랑스 공공부채가 지난해 기준 3조3000억유로(약 5300조원)를 넘어섰다”며 “빚에 짓눌리기 직전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08년 그리스와 비슷한 재정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2027년까지 국방 예산을 640억유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의 두 배 수준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안보를 지키는 건 국가 책임이기 때문에 국가가 더 강해져야 한다”며 “프랑스 국민과 시민 사회의 모든 주체가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위협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위협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유럽 방위 축소 우려 등이 프랑스가 국방비 증액에 나선 배경이다. 프랑스는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지난해 2.1%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2035년 5%로 확대하기로 했다.

문제는 프랑스 국가 부채가 이미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프랑스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23년 109.7%에서 지난해 113.1%, 올해 116.3%로 상승했다. 2030년에는 128.3%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국방비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프랑스가 꺼낸 해법이 국방비 외 나머지 예산 동결이다. 바이루 총리는 “현 국제 정세에 맞춰 국방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총 438억유로(약 70조원)의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국방을 제외하고) 올해보다 1유로도 더 지출하지 않는 게 첫 번째 원칙”이라며 “어떤 부처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유럽 각국, 프랑스와 비슷한 처지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핀란드도 2024년 출범한 중도우파 연정이 집권한 이후 국방·안보 예산을 늘리고 복지 지출을 줄이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핀란드는 국방 예산을 올해 65억유로에서 내년 67억유로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다. 올해부터 주거·실업·의료 지원 등 관련 예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올해 직업교육 예산도 작년보다 12억유로 줄였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01.2%에 달한 영국도 국방비를 올해 598억파운드(약 111조원)에서 내년 620억파운드(약 115조원)로 확대하는 대신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축소하기로 했다. 복지 개혁에도 착수했다. 지난 3월 영국 재무부는 장애인·장기 질병 수당 등의 수급 요건을 강화해 2030년까지 50억파운드(약 9조2000억원) 이상의 관련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국방비 증액을 위해 특별기금을 조성하고 헌법상 재정 규칙까지 바꿨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독일연방군 현대화를 위해 1000억유로 규모의 특별 국방기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25~2027년 770억유로를 국방 예산에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독일 의회는 올 3월 재정 준칙 완화와 국방비 예외 적용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헌법상 신규 국채 발행 한도는 GDP의 0.35%다. 관련 조항에 국방비 제외 등 예외를 추가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43%로 그나마 양호한 편인 네덜란드조차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다른 분야 예산을 줄이고 있다. 네덜란드는 국방 예산을 올해 220억유로에서 내년 240억유로로 늘릴 계획이다. 그 대신 고등교육·장학금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대 적은 국방비를 유지하면서 복지 지출을 늘려왔던 유럽 각국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김주완/한명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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