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7월 1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RE100 국가산업단지’ 조성 방안을 보고했다. 김 실장은 “이번 정책은 에너지 대전환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맞닿아 있다”며 “정책실장으로서 첫 브리핑 주제로 선정할 만큼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RE100 산업단지는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입주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첨단 산업단지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RE100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산업 인프라를 국내에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특히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높은 서남권 등 지역에 첨단산업을 유치해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 수요와의 미스 매치를 해소하고 재생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김 실장은 “지금 한쪽은 재생에너지가 남아돌고, 다른 한쪽은 부족하다”며 “송전 인프라 확충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지에 수요처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비효율성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7월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산업부, 기재부, 국토부, 환경부 등 8개 부처가 참여한 가운데 ‘RE100 산업단지 추진 TF’ 1차 회의를 열고 조성 방안을 논의했다. TF는 문신학 산업부 1차관이 단장을 맡아 연내 세부 추진 계획과 함께 ‘RE100 산업단지 및 에너지 신도시 조성과 지원에 관한 특별법(가칭)’ 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TF는 산단 개발,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기업 유치, 정주 여건 조성 등 과제를 부처별로 세분화해 구체화할 방침이다. 문 차관은 “RE100 산업단지는 우리 수출 기업의 경쟁력과 지역 재생에너지 자원 활용을 연결해 지역경제를 부흥시킬 중요한 과제”라며 “범정부적 역량을 집결해 착실히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RE100 산단, 전력 인프라 구축 넘어 산업 재편
정부는 RE100 산단이 단순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업에 안정적인 RE100 달성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에는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삼조’ 이상의 정책 효과가 기대된다는 입장이다.
김 실장은 “RE100 산단은 지역 균형발전의 첫 단추이자 에너지 신도시로의 확장 가능성까지 지닌 국가 핵심 프로젝트”라며 “이를 통해 지역에 실질적 먹거리와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 김 실장은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며, 청년층이 선호하는 정주 여건도 갖춰야 한다”며 “첨단기업 유치를 위한 파격적 인센티브와 규제 제로(0)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고에너지 소비 산업의 유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전력망 혁신도 함께 추진한다. 김 실장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전력망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며 “HVDC(고압직류송전), 분산형 전력망 등 신기술을 활용한 ‘K-그리드’ 구축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향후 격주 단위로 TF 회의를 운영하며, 올해 말까지 RE100 산단 조성 계획과 특별법 초안을 완성할 방침이다.
재생에너지 중심 성장 모색...에너지 고속도로 추진
이번 RE100 산업단지 추진은 지난 6월 19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한 에너지 고속도로 개통 계획과도 맞물린다. 고속도로가 RE100 산단을 잇는 동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산업부는 당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성장 전략과 함께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방안을 보고했다.
국정기획위는 같은 날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산업부가 태양광·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산,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RE100 산단 조성 등을 우리 경제의 진짜 성장을 위한 국정 과제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접근했고, 공약을 넘어 실현 가능성 높은 실행안을 담기 위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30년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개통’을 공약에 포함한 바 있다. 이른바 ‘서해안 HVDC망’은 호남권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 등 핵심 수요지로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다. 산업부는 해당 사업을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바꾸는 제2의 경부고속도로’에 비유하며 2030년 1단계 개통을 목표로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현재 총 620km에 이르는 송전 구간이 계획돼 있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관련해 산업부는 대규모 용지 확보가 어려운 태양광보다는 해상풍력 확대에 정책의 무게를 싣고 있다. 2030년까지 약 14GW 규모의 해상풍력 설비를 도입하는 한편, 주민 수용성 제고를 위한 이익공유제 활성화, 전력망 선제 투자, 공공 주도 개발, 국내 풍력 공급망 강화 등을 병행할 방침이다.
또 산업부는 RE100 요구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는 점을 고려해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반도 마련한다. 이에 따라 RE100 산단 내 재생에너지 설비 보급 확대와 함께 대규모 사업자와 수요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활성화도 병행할 예정이다.
한편 산업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합리적 에너지 믹스’ 차원의 원전 활용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가야 한다는 데 사회적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며 “새 정부의 실용적 기조에 맞춰 이행 방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