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이 여전히 윤석열 전 대통령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토론회에 대거 참석한 것으로, 혁신위원회가 대국민 사과문까지 내면서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약속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행보다. 당 안팎에서는 "정신 못 차리고 또 '윤어게인'이냐"는 지적이 분출하고 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정점식 사무총장, 박상웅 원내부대표 등 지도부는 전날 윤상현 의원이 주최한 '리셋코리아 국민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했다. 이 단체의 중심에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해온 '윤어게인' 세력이 있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김기현·김민전 의원 등 탄핵 국면에서 윤 전 대통령을 결사 옹호했던 친윤석열계 의원들도 얼굴을 비췄다. 현장에서는 "지난겨울 같이 고생하셨던 분들을 다시 뵈니 반갑다"는 인사말도 오갔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창하며 윤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도 이 행사 연단에 올라 "국민의힘은 두 가지를 잃었고, 마지막 하나마저 잃고 있다"며 "첫 번째는 윤 전 대통령, 두 번째는 권력, 세 번째는 마지막 남은 동료 의원들"이라고 했다.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탈당이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윤과 단절해야 한다는 건 이재명과 민주당 주장 아니냐"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과 절연을 천명한 혁신위의 말과 배치를 넘어, 사실상 혁신위가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과 다름없다.

이 밖에 행사 중에 발언들도 주로 윤 전 대통령과 부정 선거론을 옹호하거나, '인적 청산론'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았다.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는 "보수우파 지지층 가운데 80~90%는 부정선거에 대해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윤 전 대통령의 '고난 서사'를 내세워 당이 결집해야 한다" 등 발언을 했다. 심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론을 편 국민의힘 의원들을 '정치적 저능아'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윤 의원은 "뺼셈의 정치는 끝내고 덧셈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당 내부에서는 "모두에게 정치적 자유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혁신위를 띄운 지도부가 혁신과 거리가 먼 행사에 참석한 것은 표리부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진짜 혁신할 의지가 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한 관계자는 "정신을 못 차리고 또 '윤어게인'이냐"고도 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어게인, 부정선거 음모론이 합리적 상식적 보수를 지향하는 국민의힘 정신에 맞는다고 생각하냐"고 했다. 친한동훈계 김경율 회계사는 "TK에서도 지지율 밀리는 이유를 너희들만 모른다"고 했다. 김용태 의원은 라디오에서 "아직도 당내에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인식하는 분, 부정 선거론을 말하는 분들이 있다"며 "이분들이 일차적 인적 쇄신의 대상"이라고 했다.

당 일각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출범한 혁신위가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6월 이준석 지도부에서 출범한 최재형 혁신위,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의 전철을 밟게 될 거란 우려다. 최재형 혁신위는 공직 후보자 추천 시 부적격 기준 강화 및 공직 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확대 등을 제시했지만 당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요한 혁신위는 친윤석열계·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하며 기득권의 희생을 요구했지만, 매몰차게 거부당하고 좌초됐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지난 1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19%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43%였다. 해당 기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20%를 밑돌기는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또 지난 10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도는 45%로 과반에 가까운 반면, 국민의힘은 19%로 하락세가 이어졌다. 단순 수치로만 두 정당 격차는 26%포인트에 달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