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상연되는 연극 중 가장 화려한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하, 좌우,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360도 회전까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대에 출연진의 의상과 음악까지 보고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소가 딱 하나 존재한다. 바로 여주인공이다.
배우가 예쁠 필요는 없다. 섬세한 연기력과 그만의 에너지로 관객들을 설득한다면 배우의 본문을 다 한 거다. 하지만 대사에 '장미가 질투할 만큼 아름답다'고, '꾀꼬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묘사된 캐릭터를 그렇지 않은 배우가 연기한다면 몰입감이 깨질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이주영이 그랬다. 2023년 초연 당시 배우 김유정, 채수빈 등 인형 같은 외모의 연기자들이 발탁된 것을 놓고 보면 더욱 비교되는 캐스팅이다.
특히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보통 연극보다 다소 비싼, 가장 무대와 가까운 OP석과 R석이 12만원, S석도 9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캐스팅에 대한 아쉬움이 티켓값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1998년 개봉해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수상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여주인공 비올라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며 배우를 꿈꾸다 남장을 하고 오디션에 참여한다는 점, 하지만 그가 귀족 웨섹스 경과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는 점 등 주요 설정과 사건뿐 아니라 이들의 의상까지 영화와 대동소이하다.
"재능이 사라져버렸다"면서 절규하는 셰익스피어는 계약에 의해 글을 써야만 했다. 결혼은 했지만, 허울뿐으로 진실한 사랑을 몰랐던 그는 파티에서 비올라를 본 후 첫눈에 반하고 '직진' 로맨스를 펼친다. 로미오가 셰익스피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절하게 비올라에 대한 구애가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올라 역시 매력적이다. 여왕이 집권하지만, 여성은 연극 무대에도 오를 수 없는 폐쇄적인 사회, 아내의 첫 조건이 다산과 순종인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비올라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인다.
비올라의 행동이 결국 위기를 유발하고,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결과를 내놓지만 그런데도 마지막에 박수받을 수 있는 건 비올라의 모든 행동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비올라를 보며 셰익스피어는 드디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한다.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가장 큰 매력이다. 탄탄하고 풍성한 이야기 속에 실제 원목을 사용해 16세기 런던을 그대로 재현한 무대는 단 한 번의 암전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눈을 뗄 수 없도록 한다. 여기에 아코디언과 기타 등의 악기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뮤지션들이 라이브로 연주해 더욱 생생하게 극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이를 통해 숨을 죽이고, 어떠한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는 '시체관람' 대신, 함께 손뼉 치고 환호하며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는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첫 등장부터 박수를 유도하는 무대 연출은 "대중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는 송한샘 프로듀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문이다.

2023년 초연 당시 호평받았던 이상이가 셰익스피어 역으로 다시 합류했고, 이규형, 손우현, 옹성우가 새롭게 발탁됐다. 비올라 역에는 이주영 외에 박주현, 김향기가 연기한다. 오는 1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상연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