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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 "韓 20년 저성장, 규제에 눌린 기업가정신 쇠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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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새 성장 모델 못 만들어
주 52시간 등 바위 규제 없애야"

연 1%대로 떨어진 올해 잠재성장률 전망치(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연 1.94%), 7계단 추락한 국가경쟁력 순위(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기준 27위), 대만(18배)과 일본(16배)보다 저평가된 주식시장(주가수익비율 14배)….

올해 한국이 받은 경제 성적표다. 세계적인 컨설팅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는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빠진 원인을 ‘기업가정신 쇠퇴’에서 찾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상법 개정안 등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면서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오피스 대표는 1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새 정부 규제개혁 방향’ 토론회에서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비견되는 ‘20년 저성장’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기업가정신의 쇠퇴”라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면서 대기업은 신사업 투자나 인수합병(M&A) 같은 도전을 주저하고, 중소기업은 사업 전환에 머뭇거렸다는 얘기다. 스타트업이 해외가 아니라 내수만 바라보는 것도 경제 활력을 끌어내린 요인으로 꼽았다.

송 대표는 기업가정신이 쇠퇴한 원인으로 ‘잘못된 규제’를 지목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 주 52시간제 등 ‘바위(big rock) 규제’가 어떻게 기업 경쟁력을 끌어내렸는지 검토해야 할 때”라며 “기업가정신과 기업의 성장 욕구를 살려야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짓누르는 '바위 규제' 치워야 저성장 탈출"
상법 개정안·중대재해법…"외국계기업들, 韓 근무 피해"
송승헌 맥킨지앤드컴퍼니 한국오피스 대표는 14일 ‘새 정부 규제개혁 방향’ 토론회 중간에 차트를 하나 띄웠다. 삼성전자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7개 빅테크(M7)의 시가총액과 매출을 비교한 표였다. 2005년엔 삼성전자의 달러 환산 매출(800억달러)과 시가총액(1010억달러) 모두 빅테크 7곳의 평균(매출 110억달러·시총 780억달러)보다 컸다. 20년이 흐른 2024년 기준 삼성전자 매출은 빅테크 7곳 평균보다 19.7% 적었고, 시총은 10분의 1에 그쳤다. 송 대표는 그 이유로 “기업가정신의 실종”을 들었다.

◇ 20년째 똑같은 10대 수출품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송 대표는 활력 잃은 한국 산업 구조를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로 ‘10대 수출 품목’을 꺼내 들었다. 2005년과 2024년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중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등 9개가 똑같다. 2005년에 들어 있던 컴퓨터 대신 일반기계가 추가됐을 뿐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지표가 동시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1년 대비 2025년 한국 잠재성장률은 0.41%포인트 떨어졌다. ‘늙어가는 선진국’으로 얕잡아 보던 영국(0.24%포인트 상승), 이탈리아(0.28%포인트 상승)보다 못한 성적표다. 송 대표는 “잠재성장률 정체가 경제의 현 성적표라면 국가경쟁력 하락은 한국의 미래를 뜻한다”며 “기업 효율성이 저하되면서 국가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실패한 규제가 활력 떨어뜨려
송 대표는 기업가정신 실종을 한국의 ‘잃어버린 20년’의 일차적 원인으로 들었다. 글로벌 기업을 맨손으로 일군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 같은 ‘기업 영웅’이 자취를 감추면서 한국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실패한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맥킨지의 주장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의 규제 품질 지수 순위는 하위권인 24위다. 글로벌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한국의 규제 수준에 대해 “부자유, 억압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규제 강도가 점점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맥킨지와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국회 회기별 규제법안 발의 건수는 19대 1만7822건에서 20대 2만4141건, 21대 2만5858건으로 늘었다. 22대에선 4만 건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송 대표는 한국이 성장 잠재력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바위(Big Rock) 규제’의 철폐를 꼽았다. 바위 규제는 강도가 세서 혁신 기업의 발목을 잡지만 철폐하는 게 쉽지 않은 규제를 뜻한다. 맥킨지는 상법 개정안,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노동유연성 관련 규제, 상속세·증여세법 등을 대표적 바위 규제로 적시했다. 송 대표는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외국 기업은 한국에 진출하지 않으려 한다”며 “외국계 기업의 우수한 경영자는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한국 근무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안시욱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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