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이 받은 경제 성적표다. 세계적인 컨설팅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는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빠진 원인을 ‘기업가정신 쇠퇴’에서 찾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상법 개정안 등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면서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오피스 대표는 1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새 정부 규제개혁 방향’ 토론회에서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비견되는 ‘20년 저성장’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기업가정신의 쇠퇴”라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면서 대기업은 신사업 투자나 인수합병(M&A) 같은 도전을 주저하고, 중소기업은 사업 전환에 머뭇거렸다는 얘기다. 스타트업이 해외가 아니라 내수만 바라보는 것도 경제 활력을 끌어내린 요인으로 꼽았다.
송 대표는 기업가정신이 쇠퇴한 원인으로 ‘잘못된 규제’를 지목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 주 52시간제 등 ‘바위(big rock) 규제’가 어떻게 기업 경쟁력을 끌어내렸는지 검토해야 할 때”라며 “기업가정신과 기업의 성장 욕구를 살려야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중대재해법…"외국계기업들, 韓 근무 피해"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지표가 동시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1년 대비 2025년 한국 잠재성장률은 0.41%포인트 떨어졌다. ‘늙어가는 선진국’으로 얕잡아 보던 영국(0.24%포인트 상승), 이탈리아(0.28%포인트 상승)보다 못한 성적표다. 송 대표는 “잠재성장률 정체가 경제의 현 성적표라면 국가경쟁력 하락은 한국의 미래를 뜻한다”며 “기업 효율성이 저하되면서 국가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맥킨지의 주장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의 규제 품질 지수 순위는 하위권인 24위다. 글로벌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한국의 규제 수준에 대해 “부자유, 억압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규제 강도가 점점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맥킨지와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국회 회기별 규제법안 발의 건수는 19대 1만7822건에서 20대 2만4141건, 21대 2만5858건으로 늘었다. 22대에선 4만 건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송 대표는 한국이 성장 잠재력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바위(Big Rock) 규제’의 철폐를 꼽았다. 바위 규제는 강도가 세서 혁신 기업의 발목을 잡지만 철폐하는 게 쉽지 않은 규제를 뜻한다. 맥킨지는 상법 개정안,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노동유연성 관련 규제, 상속세·증여세법 등을 대표적 바위 규제로 적시했다. 송 대표는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외국 기업은 한국에 진출하지 않으려 한다”며 “외국계 기업의 우수한 경영자는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한국 근무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안시욱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