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일 최초 발표된 ‘해방의 날’ 관세율도 엉터리 수식에 근거해 임의로 결정돼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조정 관세율은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라는 정성적인 요인이 가세했다. 관세 부과를 앞두고 무역 협상에 선의로 임했던 국가들도 예상보다 높은 관세율을 받아들고 당혹스러워하는 중이다.
오락가락 관세에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과 함께 협상이 무의미하다는 회의론마저 나올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관세가 아주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점을 언급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과 관세 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알려진 나라는 영국과 베트남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나름대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협상 타결 발표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베트남의 수출품에 20% 관세(우회수출은 40%)를 적용하고 베트남의 대미관세율은 0%로 하기로 했다고 SNS에 공개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이 결과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11% 관세율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협상이 거의 진행된 가운데 막판에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어 조건을 바꾸고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미국 측에서도 이 발표에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 매체가 입수한 베트남과의 협정문 초안은 베트남에 훨씬 유리한 조건을 담고 있었다.

한국과 함께 25% 관세를 통보받았던 일본 내에선 점점 강경한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9일 미일 관세협상에 대해 “국익을 건 싸움”이라면서 “깔보는 데 참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지만 무시당했다는 얘기다.
전날 50% 관세율을 통보받은 브라질은 작심하고 미국 대신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날 “미국을 대체할 다른 무역 파트너를 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 무역에서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과 새로운 무역 통화를 찾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내세워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고 매일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한 워싱턴의 로비스트는 베트남 협상과 관련해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를 속였다”고 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은 “협상을 마쳤다고 해도 그가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리 브로드맨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국가 간 협상이 이뤄졌는데도 그 결과가 무시되는 것을 본다면, 그들은 왜 내가 당신과 시간을 낭비해야 하느냐고 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