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습 때 여섯 멤버의 발소리가 동시에 '쿵' 하는 거에 소름이 돋았어요. 심지어 그때는 9곡을 쉬지 않고 달렸죠."
그룹 라이즈(RIIZE, 쇼타로·은석·성찬·원빈·소희·앤톤)의 첫 단독 콘서트 '라이징 라우드'의 연출을 맡았던 김경찬 SM엔터테인먼트 공연 연출·제작 유닛장(이하 김 수석)은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23년 9월 데뷔한 라이즈는 데뷔곡 '겟 어 기타'를 시작으로 '사이렌', '러브 119', '붐 붐 베이스'에 최근 '플라이 업'까지 잇달아 히트시키며 팬덤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보이그룹으로 폭풍 성장했다.
데뷔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팬 콘서트로 KSPO DOME(올림픽체조경기장)에 입성했던 이들은 지난 주말 같은 장소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며 재차 '괴물 신인'임을 입증했다. 총 3일간의 공연에 운집한 관객은 3만1000여명. 전석 매진이었다. 라이즈는 3일 내내 3시간 동안 무려 24곡의 무대를 쉴 틈 없이 선보였다. 팀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역동적인 라이브 퍼포먼스가 웅장한 연출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시·청각 경험을 선사했다.
김 수석은 "뿜어내는 에너지가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 연습하는 걸 보면서 '이 정도 에너지면 어느 무대에 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할 때는 보통 에너지를 전부 다 쏟지는 않는데, 라이즈는 아니었다. 이 에너지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할 정도였다"고 극찬했다.
라이즈는 몸이 부서질 듯한 폭발적인 에너지와 힘 있는 퍼포먼스로 정평이 난 팀이다. 멤버들 역시 무대를 향한 열정과 욕심이 그 어느 때보다 넘쳤다고 한다. 당초 '나인 데이즈'·'쇼 미 러브'와 '어니스틀리'·'톡 색시' 사이에 멘트가 있었지만, 무대 흐름을 위해 이를 빼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연습 때는 9곡을 연달아 소화하는 구성도 있었다. 멤버들은 이를 해냈지만, 공연을 3일 동안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수정했다. 김 수석은 "9곡을 달리는 건 본 적 없는 구성인데, 라이즈는 에너지를 유지했다"며 감탄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두 눈으로 보였다고도 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김오름 선임은 "라이즈는 성장을 메인 키워드로 가져간 팀이지 않나. 매 공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게 매력적이었다. 팬 콘서트와 단독 콘서트 사이의 성장뿐만 아니라 서울 공연 3회차 내내 퀀텀 점프 수준으로 레벨이 달라져서 매 회차 새로운 아티스트랑 공연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속도에 맞춰서 우리도 빠르게 다른 챕터를 제안해야 했다. 그게 큰 도전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핸드 마이크를 쥐고 노래했다는 점도 라이브 퍼포먼스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됐다. 김 수석은 "앞으로 라이즈는 라이브에 강한 아이돌의 최전선에 있을 것 같다"면서 "향후 콘서트에서는 핸드 마이크를 통해 더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고, 밴드 음악으로 현장감을 생동감 있게 살려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싶다"고 생각을 밝혔다.
특히 멤버 원빈의 표현력을 칭찬했다. 김 수석은 "첫 팬 콘서트를 할 때 레이저로 장막을 만들고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가는 듯한 연출이 있었다. 설명하니 정확하게 연기하더라. 이번에도 '어니스틀리' 무대에서 유리관에 갇혀 유리를 밀어내며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설정이라고 얘기했더니 그걸 바로 해내더라"며 웃었다.


이번 공연은 라이즈의 첫 정규앨범 '오디세이' 제작 과정부터 함께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 1월 준비에 착수해 앨범의 결에 발맞춰 기획됐다. '항해'를 연출 키워드로 삼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라이즈의 외침과 포부를 공연명 '라이징 라우드'에 담아냈다.
공연 스케일은 라이즈의 투어 첫 출항이라는 의미와 맞물려 웅장하게 구현됐다. 콘서트장을 마치 광활한 바다처럼 느껴지게 한 연출은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이다. 높게 솟은 8.7m의 돛 세트를 배경으로 멤버들이 리프트에 올라타자 거대한 범선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했다. 레이저 효과와 함께 관객들이 바닷바람처럼 일렁이면서, 브리즈(라이즈 공식 팬덤명)의 응원을 동력 삼아 힘차게 나아가는 라이즈의 서사가 눈앞에 그려졌다.
이 장면은 오프닝과 엔딩 두 차례 등장해 수미상관의 의미를 더했는데, 오프닝에서는 하얀 천이 펄럭였고, 엔딩에서는 20m 상공에서 40m 둘레의 워터 커튼을 통해 물이 떨어지는 차이를 줘 여운을 남겼다.
'배'라는 오브제는 멤버 소희가 SM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남긴 메시지가 토대가 됐다고 한다. 소희는 '나에게 라이즈란 한 배입니다. 멤버들과 끝까지 함께 타고 갈 배입니다. 나에게 브리즈란 바람입니다. 저희 배를 움직여 끝까지 데려다 줄 바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었다.
"모든 건 원천 콘텐츠인 아티스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짜임새를 갖춰나갔다고 한다. 다만 김 수석은 "내러티브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면 공연의 전체 흐름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리프트는 배 모양으로 하지 않았다. 멤버들이 리프트를 타고, 돛대가 생기면서 항해한다는 느낌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비주얼적인 것 외에도 현장에서 감탄을 일으킨 건 팬들의 우렁찬 떼창이었다. 라이즈 팬덤은 가수 못지않은 환상적인 떼창 호흡을 자랑하는 걸로 유명하다. '쇼 미 러브' 때는 스크린에 띄워진 가사에 맞춰 하나의 목소리처럼 노래했고, '백 배드 백' 무대에서는 귀가 찢어질 듯한 후렴 떼창이 터져 놀라움을 안겼다.
김 수석은 "우선 퍼포먼스가 잘 보여야 했고, 또 중요한 게 팬들과의 소통이었다. 공연팀과 프로덕션, 멤버들이 '인터렉션이 되어야 좋은 공연'이라는 방향을 하나의 목표로 가지고 갔다. 요즘 휴대폰으로 촬영을 많이 하는 분위기인데, 그걸 어떻게 바꿔서 라이즈 공연의 방향성으로 가져갈 것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공연의 완성은 관객이다. 팬분들의 떼창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올려줬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이번 콘서트는 20년째 공연 업계에 몸담고 있는 김 수석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줬다고 한다. 본 무대 상부에 설치됐던 세로 21m·가로 11m의 대형 삼각 LED 구조물은 원래 2배 더 큰 크기였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축소됐고, 비주얼보다는 퍼포먼스를 더 잘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한다. 공연 기간 중 관객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세트리스트 일부를 변경하기도 했다.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공연에서 물을 쓴 게 17년 만이었다. 항상 새로운 걸 하는 건 신이 난다"고 마음을 다잡은 그였다.


"좋은 공연이요? 유기적인 흐름, 그에 맞는 비주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각적인 판타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팬들은 공연에서의 이미지, 그 기억으로 살아가잖아요. 팬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이미지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목표는 연출팀 구성원 개개인이 전체 디렉팅을 할 수 있는 능력치를 갖추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