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멕시코 생산법인에 대한 내용을 분기보고서 주요 사업장 소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공식 문서에서 삭제했다. 국내 주요 기업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여파로 해외 생산 법인의 업무를 중단한 첫 사례다.
삼성전기는 2023년 11월 자본금 49억원을 들여 멕시코 중부의 산업 도시 케레타로에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자동차 전장용 카메라 모듈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했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가 멕시코 생산 법인 업무를 중단한 것은 현지에 신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포기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관세 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고객 요청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등 제3의 지역에 신규 전장용 카메라 모듈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LG전자 등 국내 기업도 예의주시…상호관세 땐 동반 이전 움직임
관세는 기본적으로 수입 업체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테슬라, 포드 등 미국 완성차 회사가 삼성전기에 ‘갑(甲)’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관세 비용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기 입장에선 무관세를 적용받지 못하는 멕시코에 공장을 세워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북미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심화하는 것도 멕시코 공장 백지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전기가 멕시코 케레타로를 전장용 카메라 모듈 신공장 부지로 낙점한 건 핵심 고객사인 테슬라 공장이 국경만 넘으면 되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어서다. 하지만 테슬라가 판매 부진을 겪으며 삼성전기도 테슬라의 미국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기는 테슬라의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 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에도 카메라 모듈을 납품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미 하원 통과는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오는 9월 30일부터 전기차 보조금과 세액 공제 혜택이 없어져서다. 1월까지만 해도 멕시코 공장 신축에 대해 “잠정 중단 상태”라며 속도 조절에 방점을 두던 삼성전기가 최근 생산법인 업무 중단과 신공장 건설 백지화를 결정한 이유다.
트럼프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고심이 커진 정보기술(IT) 기업은 삼성전기뿐만이 아니다.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에 가전, TV 생산 거점을 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새로운 관세율을 통보하기 위한 문서에 서명했으며 7일 12개국에 발송해 내용을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대상 국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새로운 관세 정책은 다음달 1일 적용될 전망이다.
당초 46%로 예고된 베트남의 상호 관세율이 20%로 타결됐다는 점에서 “인도 등에 부과하는 상호 관세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주요 국가의 상호 관세, 스마트폰 등에 매기는 품목별 관세가 확정되는 대로 생산지·공급망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 변경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미국으로의 일부 생산라인 이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IT 업체 고위 관계자는 “스마트폰보다 국가별 특화 상품이 많은 TV, 가전의 생산지 이전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며 “관세 상승에 따른 글로벌 소비 침체 우려까지 겹쳐 실적 걱정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황정수/박의명/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